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7-12절)
성경 본문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라도 마음에 붙들고 사는 말씀이며, 크신 은혜의 말씀이다. 이 말씀은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에 나오는데, 맥락에는 차이가 있다. 마태복음은 산상수훈의 끝부분에 이 말씀이 있다. 이 말씀은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앞선 말씀은 남을 비판하지 말라는 가르침이고, 뒤이어지는 말씀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말씀과 좋은 열매를 맺으라는 말씀이다. 마태복음 7장에서는 하나님께서 거듭난 자에게 전도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주시겠다는 것이다.『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말씀하셨다. 먼저 하나님 나라의 의를 세우라는 것이다. 그러면 구하는 것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무엇을 구하라는 것인가? 하나님 나라의 의를 구하기 위해서 성령 충만을 구하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16장 4-11절에서『오직 너희에게 이 말을 이른 것은 너희로 그 때를 당하면 내가 너희에게 이 말 한 것을 기억나게 하려 함이요 처음부터 이 말을 하지 아니한 것은 네가 너희와 함께 있었음이니라 지금 내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가는데 너희 중에서 나더러 어디로 가느냐 묻는 자가 없고 도리어 내가 이 말을 하므로 너희 마음에 근심이 가득하였도다 그러하니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 함은 이 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예수님이『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다. 성령이 오시면 기억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신다고 했다. 그리고 요한복음 15장 26절에서『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라고 했다. 나를 증거하는 말씀이 바로『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시리라』고 하셨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나를 믿지 않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는 죄는 하나님의 법(율법)을 어기는 것을 죄라고 생각했다.
요한1서 3장 4절에서도 사도요한이『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이 말씀은 성령이 오시기 전까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성령이 오시므로 죄의 본질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즉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죄에 대하여라 함은 나를 믿지 않는 것』이라 했다. 여기서『나』는 예수님을 말한다.『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지 않는다』라는 것이다.『예수님이 하신 일을 믿지 않는다』라는 것은 마태복음 12장 31절에서 말한 바『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을 다 사하셨다』라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믿지 않는 자는 앞에서도 말한바 옛사람이 죽지 않았기 때문에 믿지 않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는 자이다.
예수님이『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라고 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대제사장으로서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의 죄값을 가지고 하나님 보좌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죄를 사하고 의를 이루시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모든 의를 이루신 것과 동일하다. 만일 옛사람이 죽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므로 의로운 자라고 칭할 수 없다.
누가복음의 경우는 이 귀절이 주기도문 뒤에 나온다. 누가복음 11장은 『하나님에 대한 간구』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마태복음 7장과 누가복음 11장은『간구와 은혜』라는 주제로 말할 수 있게지만, 마태복음 7장 12절에서 말하는『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는 말씀이 있다.
결국 마태복음에서『구하라』는 것은 남에게 대접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은 단순히 남을 대접하는 것을 넘어서 영의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 내포된다.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영을 구원해 내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남을 대접하는 것이『율법과 선지자』라고 말씀하셨다. 여기에 나오는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 성경을 의미한다. 율법과 선지자는 구약을 둘로 구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수님은 산상수훈 전체에 걸쳐서 율법학자들의 그릇된 율법관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의 율법학자들은 율법의 정신보다 문자에 치우치는 일이 많았다.
주기도문 중에서『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는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 질 수 있도록『하나님 나라 생명의 양식을 달라』는 말이다. 오늘날 대개『일용할 양식』이라 함은 매일 먹는 육적 양식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장 25절에서는『목숨을 위하여 먹을 것인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누가복음 12장 29절에도 예수님이『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여 구하지 말며 근심하지도 말라』라고 하셨다.『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기 위해 생명의 양식이 필요하다』라는 말이다.
요한복음 6장 27절에도 같은 말씀이다.『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생명 양식(떡)은 영원한 언약(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구원을 얻게 되리라는 언약)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에게 떡을 떼어서 줄 때『이것은 내 몸이다』라고 하시고, 또 잔을 주시면서『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라』고 하셨다. 새언약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영원한 언약이다. 영원한 언약은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하신 언약이요, 약속의 씨인 예수 그리스도를 말한다. 떡이 영원한 언약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불의한 재판과 과부의 비유를 들어서 부르짖으라, 택하신 자의 원한을 들어주지 않겠느냐』라고 하셨다. 택하신 자들이 가진 원한은『하나님 나라에서 사단에게 속아서 그를 따라갔던 것』을 말한다. 사단의 유혹에 속아 넘어간 것을 후회하여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소원이 되어야 하고,『유혹한 사단을 책망하고 탄원해야 한다』는 말씀이다.『세상의 복을 빌고 잘되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하나님 나라에 되돌아 가기 위해서, 사단을 책망하고 예수님과 더불어 함께 돌아가기를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과 함께 돌아가기 위해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저지른 범죄가 투영된 옛사람을 통해서 깨닫고 회개하고 옛사람을 벗어야 하는 것이다. 옛사람을 벗는 것은 예수님과 더불어 십자자가에서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예수님이『이런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는 사람을 보겠는가』라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사단을 따라간 잘못을 회개하고,『사단을 책망하고 그 사단을 따라가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옛사람을 십자가에서 죽는 그런 믿음을 가진 자가 과연 있겠는가?』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셨다.『그러나 인자가 올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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