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창세기 12장 4절『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가진 자의 모델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성도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성도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하나님 나라를 상징)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고향 친척 아비 집이 무엇인가? 고향이라는 히브리 원어의 에렛츠는 땅이다. 이 땅은 두가지 의미를 갖는다. 아브라함이 살고 있는 그곳(갈대아 우르)이라는 의미와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이 물질세계에 살고 있는 세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물질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영적인 나라로 마음을 향하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가 되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9-10절에서『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그래서 이 땅에서는 항상 나그네임을 기억하고 언제든지 이 땅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라는 것이다. 11장 15-16절에서『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마태복음 13장 44절에서『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천국을 발견한 자들은 비록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마음을 집중해서 천국에 대한 말씀에만 집중한다는 것이다.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자들은 이 땅에 있는 것들만 관심이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19장 21-2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 청년이 재물이 많으므로 이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부자청년은 재물과 영생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재물을 택한 예가 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10절에서『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셨다. 친척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힘의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는 것은 의지할 곳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롯을 데리고 나왔다. 친척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구약성경의 열왕기를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화를 내시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주변의 강대국에 의지하는 것 때문이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은 가족이나 친척 등에 대한 애착을 뛰어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은 단지 이 땅에서 혈연으로 이루어진 존재이지만, 하나님은 영적으로 연결된 분이라는 것이다. 혈연은 죽음으로 사라지지만, 영적인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4장 21-22절에서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말씀이다. 오늘날에 적용하면, 물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 말고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10장 34-36절에서『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하나님이 주시는 영생은 가족간에 나누는 것보다 비할 수 없는 너무나 큰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마가복음 10장 29-30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창세기 12장 1절에서『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가야할 곳이 하나님이 보여줄 땅이다. 하나님이 보여줄 땅은 성경(창세기 1-3장) 안에 있다. 가나안(그리스도)이 곧 하나님 나라이며, 원래 돌아 가야할 곳이기 때문이다. 성도가 원래 돌아가야 할 그곳은 바로 그리스도 안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인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사랑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된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이며,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그 사랑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면 구원이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보여줄 그곳으로 가라는 것은 성도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과 하나가 되라는 의미를 갖는다.
성경은 신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세계가 주는 것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소망하며 살아가라고 하시는데, 많은 경우 정반대로 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유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예수와 함께 부활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하나님은 신도들에게『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고 있다.
『땅으로 가라』는 말은 계속적인 행보를 의미한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해서 가라는 것이다. 롯의 처에 대한 말씀이 있다. 롯의 처는 뒤를 돌아보다가 소금기둥이 되었다. 죽는 날까지 계속 진행되어야 함을 말씀하신다.
누가복음 17장 31-35절에서『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성도가 뒤를 돌아다보면,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날라오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긴 역사 속에서 그 채찍의 경험을 당했다. 성도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달려가는 신앙의 경주자들이라는 것이다. 누가복음 9장 62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하나님이 지시한 후에 목적지로 가지 않고 하란에 머물렀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라는 도시문명의 마음에서 완전히 떠나지 못한 것을 암시한다. 하란은 갈대아 우르보다 더 화려하고 음란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곳에서 아버지 데라는 묻히게 된다. 또한 친척 롯을 데리고 나옴으로서 이방 땅으로 가는 두려움에서 친척을 의지하려는 마음이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양떼들로 인해서 롯과 헤어진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그네가 되어서 하나님이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