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장 9-13절)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예수께서 마태의 집에서 앉아 음식을 잡수실 때에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와서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앉았더니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세리와 죄인들은 모든 사람들로 부터 정죄받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세리인 마태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이 예수께 나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라고 예수님을 비난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것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메시야가 이스라엘에 오면 먼저 자기들에게 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것을 보고 불만이 되었다. 자기들은 죄인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특히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켜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 인정받는다 라고 생각하고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누가복음 15장 1-7절에서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는 비유로 말씀하셨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이스라엘이다. 이 양들을 두고, 예수님은 잃어버린 양 한마리(죄인들)를 찾으러 다니셨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잃어버린 어린양의 비유를 하신 배경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불만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은 의인들인데, 메시야가 오면 당연히 자기들에게 올 것이라고 확신했는데, 메시야라고 하는 예수가 죄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므로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아셨다. 그래서 이 비유의 말씀하신 것이다.
비유는 숨겨진 뜻이 있다. 듣고 깨닫는 자만이 알게된다. 들을 귀가 없는 자는 알지 못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11-13절에서 씨뿌리는 비유가 있다.『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그러므로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것은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이사야서 55장 1절에서『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목마르고, 돈 없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이 주신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세리와 죄인들이 하나님 나라를 구한 것이다. 마태복음 5장 3절에서『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심령이 가난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영이 가난한 것을 아는 자다. 영이 가난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깨닫고 영을 살리는 생명을 달라고 하면 주시는 것이다.
영을 살리는 생명은 바로 하나님 나라를 말한다.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서는 회개하여, 하나님께 구해야만 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주신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양 일백 마리에 대해서 알아야만 한다. 열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충만한 것을 나타낸다. 일백은 열의 열이다. 즉 더욱 더 충만하다는 것이다. 양 일백 마리는 이스라엘 전체를 두고 말씀하시는 것이고, 더 넓게는 천하만민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양 일백 마리는 이스라엘을 염두에 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에서『잃다』라는 말의 원어는『죽다, 파괴된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 작은 아들이 회개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다. 아버지가 잔치를 해 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큰 아들이 여기에 대해서 불만을 터뜨리는 것이다.
누가복음 15장 32절에서『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라고 말했다. 여기에서『죽었다가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여기에서 잃었다는 말이 죽었다는 의미로 대체된다.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죽은 자 곧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생명을 주신다는 뜻이 들어있다.『죽은 것과 잃은 것』의 의미는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떠나므로 그들이 하나님께 죄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죽었으며, 잃어버린 것이다.
마태복음 9장 13절에서『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예수님이 의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너희는 자칭 의인이라고 하므로 의원이 필요없다』라는 것이다.
요한복음 9장 39-41절에서『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맹인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자들이며,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소경인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심판하시는 내용은『보지 못하는 자를 보게하고, 보는 자들을 보지 못하게 한다』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세리나 죄인들이다. 보는 자들은 바리새인들이다. 자칭 하나님 나라를 본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보게 한다는 것이다.『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바리새인들이 자칭 하나님 나라를 본다고 하므로, 사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자들의 눈을 감겨버리는 것이다.
회개한다는 것은 돌이킨다는 것이다.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지은 죄로 인하여 회개를 생각하고 있지만, 회개의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 나라를 떠난 것을 회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며 그래서 돌이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탐욕을 포기하고 돌아가는 것이 회개다. 탐욕을 포기하는 것은 육체 속에 숨겨진 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육의 탐욕은 자기라는 주체로 나타난다. 자신이 하나님 나라를 얻기 위해 무엇인가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탐욕의 뒤에는 사탄이 뱀처럼 숨어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 회개다. 그래서 하나님은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를 기쁘게 맞이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을 버리고 돌아오라는 것이다. 버리는 것이 바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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