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의 비유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4장 29-35절)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예수님이 오시는 것을 다 알게오신다.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과 온 족속이 다 알게오시는 예수님은 어떻게 차이가 있는가? 도적같이 오시는 예수님은 휴거를 당하는 자를 말하고, 모든 족속이 보는 상황에서 오시는 것은 7년 대환란 후에 오시는 지상재림인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재림때 나타날 현상을 말하고 있다. 예수님이 하늘에서 징조가 나타날 것인데, 이와 관련하여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무화과 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로마에 의해 멸망했지만 거의 2000년이 지나서 이스라엘이 독립했다는 것을 부각시킨다.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있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한 사람은 하나님이시다. 포도원은 이 세상을 말한다. 그래서 무화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을 말한다. 그리고 열매를 구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스라엘은 열매가 없으므로 찍혀버렸다. 

마태복음 21장 9절에서『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마찬가지로 마가복음 11장 13절에서도『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무화과의 때가 아니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1장 9절에서 길가의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하신 말씀이『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다.『영원토록』이라는 말은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스라엘이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말씀이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저주하신 대상은 무화과 나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하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해서 기대하신 열매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셨으며,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서, 도저히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은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하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못박아 버렸다. 하나님은 율법 속에 있는 이스라엘이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바라신 것이다. 애굽에서 바로의 종이 된 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것처럼, 이스라엘도 부르짖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했다. 이스라엘의 대표격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부르짖지 않고, 세리, 창기, 병자들은 부르짖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이 그리스도를 발견한 것이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여기서『가지가 연하여지고』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독립을 두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는 이스라엘의 독립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 때의 상황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님은 그 상황을 노아의 때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셨다.『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노아의 시대에 하나님이 세상을 물로 멸망시켜버렸다. 그 이유는 창세기 6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창세기 6장 2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그리고 창세기 6장 5절에서『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당시의 세상 사람들의 영적 간음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모두가 세상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자기의 존재를 내세우는 자들은 탑을 쌓고 우상숭배하는 자들이다. 
대부분 사람들의 신앙이 자신이 중심이 되어 하나님을 인식하고 판단하려고 한다. 내가 존재하므로 하나님도 존재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매일『하나님은 그곳에 정말있는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것이 여러가지 종교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을 확인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확인해보고 찾으려고 하는 그 하나님은 그에게 우상이 되며, 그 하나님을 찾는 행위를 죄가 된다. 이것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죄의 본질이며, 하나님을 확인하려는 주관적이고 심리적인 자기 중심이기 때문이다. 이는 언제든지 자기의 마음에 따라 신의 모습이 달라지게 된다. 

피조물은 하나님의 창조 아래 있을 때 비로소 존재일 수 있으며, 생명으로 살아있는 존재가 된다. 피조물은 창조주의 은혜 아래 있을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 피조물은 창조주 앞에서 죽은 자로 되어있을 때 비로소 창조주의 은혜 아래에서 가치를 인정받게 된다. 첫째 사람의 이름이 흙(아담:사람)이다. 이 말의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죽은 존재라는 것이다. 흑이라는 사람은 갇혀있는 자라는 것이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흙이어야 비로소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된다. 갇혀있는 자에게 그곳에서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이 바로 은혜라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살아있는 존재는 은혜를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가 아니라, 무엇인가 열심히 하여 하나님께 살아있는 존재로 보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자기를 부인하라』고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이유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모든 인간들에게 『너희는 다 죽은 자라』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시기 위해 오셨다. 그래서『내가 살려주겠다』라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다 죽은 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주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손길이 주어지지 않고, 사탄이 지배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존재성을 확인해보려고 하고, 그 무엇인가를 해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인해보려는 자들은 다 이와 같은 자들이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너희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죽은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회개하라고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의만 쌓는 행위를 한 것이다. 예수님은『너희들은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라는 것을 가르쳤는데, 유대인들은 죽은 자가 아니라 오히려 예수를 죽여, 스스로 산자로 행세한 것이다. 유대인 뿐만 아니 오늘날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의 모습이고, 마지막 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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