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마태복음 3장 11-12절)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세례요한이 물에서 세례를 주는 의미는 죄를 씻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받는 세례의 의미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로마서 6장 3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장사된 자를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해 주신다. 이때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나는 구원의 세례라고 말할 수 있다. 구원의 세례는 성도 안에서 역사하신다. 

그러나 성령세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도에게 계시를 주시고 역사하게 만드신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힘을 주시는 보혜사, 능력의 세례인 것이다. 성령 세례는 성도로 하여금 성령 안에서 역사하신다. 세례요한이 말하기를『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로마서 10장 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으므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원에 도움이 될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던 성도에게만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부활을 본 자들도 남에게 그 부활의 증거를 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은 성령세례를 주셨다. 

주님이 승천하시기 전에『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라』고 하셨다. 성령세례는 다른 사람의 영적 생명을 살리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거듭난 자에게만 주시는 것인데, 거듭나지도 않으면서 성령을 받으려고 하는 자들은 성령이 아니라 악령을 받는 것이다. 성령세례는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도에게 계시를 주시고 역사하게 만드신다. 성령세례는 성도가 복음을 전하고 승리하는 삶을 위하여 힘을 주시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말하기를『내 뒤에 오시는 이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리라』예수님이 십자가에 죽고 삼일만에 부활하셨다. 부활을 아무에게나 보여주지 않으셨다. 로마서 10장9절에서『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했으므로 부활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는 것이 구원에 도움이 될 것인데, 일부의 사람들에게만 보여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따랐던 자에게만 보여주신 것이다. 

주님은 여기서『불세례』라는 말을 하지 않으셨다. 세례요한은 불세례라고 했는데, 예수님이 말씀하지 않으므로 『불세례』라는 말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한번 사용되었다.『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불만 붙었으면 다른 것은 바랄게 없다는 말이다. 예수님이 삼년 동안 하신 것은 불을 땅에 던지러 온 것이다. 그리고 50절에서『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많은 사람들이 성령세례에 대해서 들었을 것이다.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좋아서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신자들이 보기에『저 사람들, 술 취했구만』라고 했다. 술 취하면,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 마찬가지로 성령세례를 받아서『새 술에 취했다』고 말한다. 새 술은 바로 『천국이 임한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복음이 전파되기 위함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이 구원이 전달되기 위해서 성령세례를 구한다. 

제자들은『지금 아침이 아니냐 여기 술 마신 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삼년 동안『성령세례를 준다』고 말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내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온 이유는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라고 하셨다.『나의 받을 세례가 있으니』라고 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겨주옵소서 그리고 내가 죽게 되었나이다』라고 기도하셨다. 예수님도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 뜻을 따르려고 하니까 죽게된 것이다. 우리도 내 소원을 내려놓고 주님의 뜻을 따르려고 한다면 기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게 불세례다. 불세례는『죽을 것 같은 것을 행하게 하시는 것』이다. 회개하고 거듭나서 죄사하심을 받았지만 성령세례가 임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거듭난 자가 구해야 하는 것은 불세례다. 

사도행전 19장 2절『이르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이르되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계심도 듣지 못하였노라』에베소 교회의 이야기이다. 이들은 믿고 있었다. 믿고 있으므로 사도바울이 믿을 때『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다.『회개했느냐?』라고 묻지 않고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그 이유는 18장 24-25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언변이 좋고 성경에 능통한 자라 그가 일찍이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아볼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대해서 잘 몰랐다. 그래서 요한의 세례 만 가르쳤는데,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을 얻는 회개의 세례다. 요한이『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다. 그리고 18장 27-28절을 통해서 아볼로가 성경의 지식을 많이 알고 있으므로 회당에 가서『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말하면서 유대인의 말을 이겼다고 한다.

 에베소의 믿는 신자들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고 믿은 것이다. 그리고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 아마 회개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이『너희가 믿을 때 그 이후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성령이 있음을 듣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은 많은 교회에서는『당신이 예수를 믿는 것이 성령의 역사로 된 것이지, 성령이 역사하지 않고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을 수 없다』고 가르치는 현실이다. 많은 교회에서는 고린도전서 12장 3절을 인용해 준다.『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이게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과 마태복음 7장 22-23절에서 말하는 것은 구원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에서『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라는 말은『성령 안에서』라는 말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이 말은 구원받았다는 말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가 능력으로 말씀을 전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을 때, 성령께서 성도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셔서 성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도 않으면서, 성령만 구하는 모습을 가끔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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