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마태복음 13장 31-32절)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예수님이 사마리아에 들렀을 때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있다. 요한복음 4장 22절에서『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자기 밭에 심은 자는 바로 하나님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자기 밭(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겨자 씨)를 심었다. 그래서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되었다. 이 공중의 나는 새들이 바로 베드로가 환상 중에 보았던 그 새들이다. 바로 이방인들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에서 태어났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이방인들이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도 했고 절망도 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로 성장하여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이 겨자씨 비유를 들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아주 작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도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강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시작이 미약해도 마침내 겨자나무처럼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며 인내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성령이 오신 후에 하나님 나라는 확장되었지만, 사탄은 온갖 방법으로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저지시켜 왔다. 사탄은 성도들을 정치적으로 핍박하고, 성경을 왜곡시키고, 가짜 복음을 퍼뜨려, 성도들이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특히 예수님은 믿음의 크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17장에서 간질로 고생하는 자를 어떤 사람이 데리고 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수님께 아이를 데리고 와서 예수님이 고쳐주었다. 제자들이『우리는 왜 고치지 못합니까』라고 물렀더니『패역한 세대여』라고 하시면서 20절에서『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겨자씨 만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겨자씨 만한 믿음을『순수하고 진실한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교회에서는『날마다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 기도하고 간구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육정이나 혈통으로는 이런 믿음을 가질 수 없다. 오직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는 자만 이런 믿음을 선물로 받을 수 있다. 오직 이런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땅을 기경하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땅이 기경될 때 농부가 씨를 뿌려주는 것이다. 농부가 땅을 기경하고 씨를 뿌리고 싹이 나서 가꾸면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한다. 믿음도 이와 같은 것이다. 마음의 밭을 갈고 하나님 말씀의 씨를 뿌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그런데, 굳어진 마음의 밭을 어떻게 갈 수 있는가?
씨뿌리는 밭의 비유에서 네가지 유형의 밭이 소개된다. 즉 네가지 유형의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 오직 한 종류의 사람 만 좋은 밭이다. 말씀의 씨가 마음에 떨어져서 생명이 될 수 있는 것이 좋은 밭이라는 것이다. 좋은 밭은 땅을 갈아서 씨뿌리기 좋은 상태의 밭이다. 『마음을 간다』는 것은 수없이 성경의 말씀을 상고해서 하나님나라에서 범죄한 사실과, 이 땅에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마음의 밭을 경작한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마음의 상태를 거룩하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잘 이해하고,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그 말씀이 생명이 된다고 생각한다. 좋은 밭을 만들기 위해 거룩한 마음의 상태가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거룩해 질 수 없다. 좋은 밭으로 경작하는 일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불가능한 것임을 알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이 경작하는 것이다. 죽는 것은 탐욕의 마음이 죽는 것이다. 율법 속에서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그리고 희생제사를 통해서 죽어야 할 존재임을 깨닫고, 그 속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발견하는 것이다. 이것이 땅을 경작하는 의미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 속으로 들어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이다.
네가지 마음 밭에서, 좋은 밭을 제외한 나머지 밭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밭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밭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과 흑암에 갇힌 자라는 것과 생명과일이 필요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좋은 밭이다. 그래서 좋은 밭에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탐욕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같이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시는가? 『자기』가 바로 영을 죽이는 육의 옛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영을 살리기 위함이었다. 그 영은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다. 그런데, 그리스도 안에 있던 자들이 사탄의 유혹을 받아, 그리스도로부터 이탈되어, 이 세상에 갇힌 것이다. 성경은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교회는 성도의 영을 말한다. 영이 이 세상의 물질인 흙에 갇히므로서 죽어버리고, 인간이 된 생명체는 혼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죽었다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한다.
마태복음 13장 11절에서『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여기서 너희는 제자들이다. 오직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만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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