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산에서 내려 오시니 수많은 무리가 따르니라 한 나병환자가 나아와 절하며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거늘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즉시 그의 나병이 깨끗하여진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8장 1-4절)
예수께서 산상수훈을 마치시고 내려오셔서 첫 번째 이적을 베푸시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다. 나병(문둥병)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죄를 지은 결과를 상징하는 가장 금기시 되는 질병이었다. 나병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저주의 모습을 나타낸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을 때 미리암이 조롱했다가 하나님께서 벌을 내려 나병병에 걸렸다. 레위기 13장 1-14절에서 문둥병 환자는 회당 공동체와 및 가정공동체를 박탈당하여 소외당했다. 이러한 사회적 상황 속에서 예수님이 문둥병 환자에게 병을 치유해주신 것은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질병이라도 치료 해줄 수 있는 능력 있는 메시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율법에 따르면 나병자와 접촉한 자는 그 자신 또한 부정한 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나병환자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당시 제사장들조차도 환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였고 오직 병명의 판단이나 정결케 하는 판결의 예식만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부정한자에게 관심을 가져주셨고 손을 갖다 대셨다. 아무런 전염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 보이심으로, 나병으로 상징되는 죄악의 치명적 형벌인 사망을 오직 예수님만이 고치실 수(건지실 수) 있는 참 메시야이심을 밝히고 있다.
복음서 초기에 예수님은『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와 같은 함구령을 내린 것은 예수님이 메시야로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였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오해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죽기 전까지는 율법을 따르셨다.『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나병환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다. 제사장에게 가라는 의미는 너희들은 아직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레위기 14장 1-9절에서 나병에 대해서 규례로 정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병 환자가 정결하게 되는 날의 규례는 이러하니 곧 그 사람을 제사장에게로 데려갈 것이요 제사장은 진영에서 나가 진찰할지니 그 환자에게 있던 나병 환부가 나았으면 제사장은 그 정결함을 받을 자를 위하여 명령하여 살아 있는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오게 하고 제사장은 또 명령하여 그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 정결함을 받는 자는 그의 옷을 빨고 모든 털을 밀고 물로 몸을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니 그 후에 진영에 들어올 것이나 자기 장막 밖에 이레를 머물 것이요 일곱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
정한 산새 두마리, 백향목과 홍색실과 우슬초와 흐르는 물, 질그릇의 의미를 알아야만 한다. 새는 마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하실 때『천국은 마치 밭에 뿌린 겨자씨와 같다』고 표현했다. 이후에 겨자씨가 싹이 나고 줄기가 나고, 자라서 많은 새가 깃든다고 말씀하셨다. 겨자씨가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래서 새는 사람(이방인)들을 말한다.
백향목은 창세기 6장 14절에서 나오는 방주다.『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고페르 나무가 백향목(잣나무)이다. 역청을 바르는데, 역청은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그래서 백향목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방주의 재료가 되었다.
홍색실은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서 부자가 입고 있었던 옷이 자색옷이었고, 자색옷이 홍색실로 되어 있었다. 성막과 휘장, 제사장 옷을 만드는 재료가 된다. 홍색실은 제사장을 상징한다. 출애굽기 26장 1절에서『너는 성막을 만들되 가늘게 꼰 베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 놓은 열 폭의 휘장을 만들지니』그리고 출애굽기 28장 6-8절에서 『그들이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정교하게 짜서 에봇을 짓되 그것에 어깨받이 둘을 달아 그 두 끝을 이어지게 하고 에봇 위에 매는 띠는 에봇 짜는 법으로 금 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과 가늘게 꼰 베 실로 에봇에 정교하게 붙여 짤지며』에봇은 제사장이 입던 옷이다.
우슬초는 다윗이 죄를 범했을 때, 우슬초로 죄를 정결케 해 달라고 하는 내용이 있다. 우슬초는 양의 피를 바르던 붓이다. 출애굽기 12장 21-22절에서『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의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우슬초 묶음을 가져다가 그릇에 담은 피에 적셔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 밖에 나가지 말라』
『새 하나는 흐르는 물 위 질그릇 안에서 잡게 하고』흐르는 물은 살아있다는 표현이다. 율법은 생명이 없다. 그러나 율법 안에 그리스도가 숨겨져 있다. 바로 숨겨진 그리스도가 생명의 물이 된다. 율법은 사람을 소생케 하고 생명으로 이르게 할 선생 역할을 한다. 물은 말씀이다. 생명이 감추어져 있는 말씀이 율법이다. 질그릇은 흙으로 만든 그릇으로 토기를 말한다. 사람의 몸을 말한다. 고린도후서 4장 7절에서『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보배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질그릇은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율법을 진리로 이르게 하는 분은 인자이시다. 그래서 여기 질그릇이 인자를 나타낸다. 질그릇인 인자 안에서 정한 새를 잡으라는 것이다.
『다른 새는 산 채로 가져다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가져다가 흐르는 물 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 나병에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려 정하다 하고 그 살아 있는 새는 들에 놓을지며』그리스도 안에서 죽으면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거듭남)을 나타낸다. 두 마리의 새는 나병환자(죄인)를 위해서 죽고 사는 것이다. 결국 나병환자가 죽고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결의식을 하게하는 이유는 육체의 질병이 다 나앗지만, 이것을 통해서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하게 나병(죄악)을 낫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에서 지키도록 정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을 떠난 나병환자들아 너희들은 이것을 보고 영원히 질병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레위기에서 정하고 있는 의식을 행해서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1500여년 동안 율법을 지켜왔다. 그들은 레위기에서 하나님이 의도하신 내용을 깨달았어야만 했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서 벗어난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는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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