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


(마태복음 21장 17-22절) 그들을 떠나 성 밖으로 베다니에 가서 거기서 유하시니라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예수님께『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라고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믿음과 관련하여, 그리고 기도에 대해서 다소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하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저주하신 이유가 무화과나무의 열매가 없는 것을 생각하여,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열심을 내야한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태어나신 이유는 때가 찼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장 15절에서『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리고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때가 찼다는 것은 열매를 수확하는 때를 의미한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에게 열매를 기대하시는 것이다. 

열매는 무엇인가? 회개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되도록 하는 것을 열매로 생각하는데, 성경의 의미를 너무나 모르는 것이다.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기 전에 성전에 들어가셔서 정화하셨다. 아버지의 집을 강도들의 소굴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사꾼들을 내쫒으셨다. 그래서 사람들이 성전을 정화하지 못한 것이 열매맺지 못한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예수님은 열매를 기대하셨으며, 그 열매맺는 자들을 만나주셨다. 그들은 세리와 죄인들이었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세리와 죄인들은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죄인들임을 고백하고 불쌍히 여겨달라는 말 이외는 할 수 없는 존재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생각하는 열매는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고백하고 부르짖는 자를 의미하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자들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열매맺는 자라는 것이다. 따라서 율법에 따라 의로운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열매맺지 못하는 자들이 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둔 이유는 그들이 갇혀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 24-25절에서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돌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기억하셨더라』오늘날도 갇혀있어서 부르짖는 자를 찾으신다. 그런데, 세상이 즐겁고 좋다면 부르짖는 의미를 모르는 것이다. 영적으로 세상에 갇혀있어서 괴롭고 고통스럽다는 것을 깨닫는 자만이 부르짖을 수 있다. 하나님이 부르짖는 자를 찾으실 때가 바로 때가 찬 것이다. 예수님이 태어나실 당시, 하나님께 부르짖은 자들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아니라, 세리와 죄인들이었다는 것이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들은 영적으로 갇혀있음을 깨닫는 자들이다. 자기가 스스로 율법에 따라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판단해서 노력하는 자들은 부르짖는 자들이 아니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바로의 지배아래 가둔 것이나, 율법으로 죄 아래 가둔 것이나 같은 의미를 갖는다. 로마서 3장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죄를 깨닫는 자가 갇혀있음을 깨닫는 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구원받는다』라고 생각하면서도, 세상이 좋고, 갇혀있었음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죄인들인 것이다. 자기가 스스로 예수의 피를 의지하여 죄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할 뿐이다. 죄에서 벗어나는 자는 예수를 믿어서가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 함을 성경은 알려주신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바로 이 사실을 믿는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는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이며,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구원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이 좋고 구원의 의미도 모르는 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아무리 불러도, 열매없는 죄인으로 심판받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누가복음 13장 6-9절에서『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한 사람(하나님)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이스라엘)를 심었는데, 3년을 기다려도 열매를 구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열매를 구하지 못하므로 예수님이 시장하게 된 것이다. 세리와 죄인들을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 열매맺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여기서 믿음과 기도에 대해서 언급된다. 믿음에 대해서는 무화과 나무에게 된 일과 바다에 던지우는 일을 대비시켜 놓았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가 율법에 갇혀있는 바리새인들과 같은 교회 사람들에게 죄와 구원에 대해서 잘 설명해주는데, 그들이 위와 같은 내용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 당시와 같이 그들은 찍혀 불에 던져지는 무화과나무와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영적으로 세상에 갇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함을 깨닫고,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이 산(자기 의:산당 우상의 죄들)더러 들려 바다(죄의 죽음: 홍해바다)에 던져지는 것과 같이 죄로부터 자유함을 입을 것이라는 비유의 말씀이다. 이와 같은 표현이 누가복음 17장 6절에서『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뽕나무도 애굽의 죄를 상징한다. 즉 애굽의 군대가 홍해바다에 수장당하듯이 죄가 바다에 들어가 다 없어졌다는 것이다. 성도는 베드로와 같이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땅에서 매면,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릴 것이요』교회 사람들이 이 말을 믿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성경으로 약속하신 죄의 문제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말씀이다. 요한복음 20장 23절에서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같은 의미를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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