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


창세기 9장 18-23절에서『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은지라』에 대해서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당대에 의인이라고 여겨졌던 노아도 인간인지라 실수할 수 있다고 말을 한다. 비록 홍수 이전에는 의인으로 여겨졌지만, 홍수이후 노아가 정신적으로 헤이해졌으므로 이런 일이 생겼고, 그래서 오늘날 우리도 성경 말씀대로 잘 행해야만 한다고 말을 한다. 
노아가 방주에서 땅으로 나온 후 세아들을 통하여 자손이 번성하고 그리고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다. 창세기 9장 20절에서『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히브리 원본에는『이쉬 노아가 땅(아다마)을 파서 포도원(케렘)을 심었다』라고 되어있다. 성경은 포도원을 말할 때는 이스라엘을 두고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사야서 5장 7절에서『무릇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가 기뻐하시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 그들에게 정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포학이요 그들에게 공의를 바라셨더니 도리어 부르짖음이었도다』, 시편 80편 8절에서『주께서 한 포도나무를 애굽에서 가져다가 민족들을 쫓아내시고 그것을 심으셨나이다』예수님도 비유로 포도원을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21장 33절에서 『다른 한 비유를 들으라 한 집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어 산울타리로 두르고 거기에 즙 짜는 틀을 만들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더니』 

포도원(이스라엘)에는 포도나무가 있다. 포도나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이스라엘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임하시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 1절에서『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15장 5절에서는『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포도나무에는 포도가 생산된다. 포도를 이용해서 포도주를 생산한다.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오는 말씀을 의미한다. 요한복음 2장 9절에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사건을 설명한다.『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예수님이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 여섯개의 물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했다. 그래서 물이 포도주가 되었다. 물항아리는 율법을 상징한다. 이 물(율법)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이루어지면 포도주(복음)이 된다는 것이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것은 하나님 말씀에 취했다는 것이다. 장막은 성막으로 해석된다. 출애굽기 26장 9절에서 『그 휘장 다섯 폭을 서로 연결하며 또 여섯 폭을 서로 연결하고 그 여섯째 폭 절반은 성막 전면에 접어 드리우고』여기서 사용한 성막의 히브리어가 장막과 같은 단어다. 노아가 하나님 말씀에 취하여 장막(성막)안에서 벗었다는 것이다.『옷을 벗었다』는 히브리어는『가라』로서 알몸으로 되었다는 것이다. 창세기 9장 22절에서는 벌거벗은 몸을 하체로 번역되었는데, 의미가 달라진다. 하체라고 말을 할 때는 생식기를 연상하게 된다. 그러나 벌거벗었다는 것은 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노아에 있어서 벌거벗었다는 것은 히브리어로『가라』이지만, 창세기 3장 10절에서는『에름』이라는 단어로 사용되었다.『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옷을 벗었다 즉 벌거벗었다는 말은 위의 두가지 모두 장막 안에서 죄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장막 안에서 죄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창세기 9장 22-23절에서『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여기에서『알리매』라는 의미가 중요하다. 함이 죄를 판단하여 말을 한다는 의미다. 즉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그런 개념인 것이다. 창세기 3장 12절에서『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3장 11절에서『이르시되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알렸느냐 내가 네게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열매를 네가 먹었느냐』여기서『알렸느냐』라는 단어가 바로 함이『알리매』라는 단어와 같은 히브리어 단어다. 이 문장은 곧『네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구나』라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2절에서『아담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 있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열매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라고 대답했다. 함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는데, 노아는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함의 아들인 가나안은 뱀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를 통하여 장차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미리 보여주시는 것이다. 창세기 9장 23절에서『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셈과 야벳은 자기들의 옷을 덮어주었다. 셈과 야벳은 하나님이 택하신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통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나게 하고, 죄를 드러나지 않게 하여 죄를 외면해버린 것이다. 야벳은 셈의 형이며, 장자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천하만민의 모델이다. 이스라엘의 결국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잘못된 길로 가버린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이 보시기에 이스라엘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하나님을 떠난 악한 자들이라는 것을 보여주신다. 

함과 가나안은 뱀의 후손과 같은 모습을 한다. 뱀의 후손은 이스라엘에 대비되는 이방인의 모습이며, 하나님을 떠난 자의 모습이며, 스스로 자기의 의를 세우는 자다. 이스라엘이던 이방인이던 모두가 자기의 의를 세우려고 하다가 멸망당한 것이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창세기 9장 25절에서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저주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분리되어 물질세계에 들어온 것을 의미한다. 죄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보려고 하는 자들은 모두 저주를 받게된다.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죄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둘째 사망에 들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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