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마태복음 10장 32-33절)
이 말씀은 마태복음 25장 1-13절에서 나오는 열처녀의 비유와 동일하다. 슬기로운 다섯처녀는 혼인잔치에 들어갔는데, 미련한 다섯처녀는 들어가지 못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했다. 그런데『예수님은 모른다』고 했다. 다섯처녀가 단지 예수님을 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이유는『자기를 기다리는 자들을 데려가기 위해서 오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수님이 데려갈 사람을 알고 있다. 미련한 다섯처녀는 데려갈 사람이 아닌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과는 초점이 맞지 않다.『깨어있으라』라는 말은 율법의 덮개가 벗겨져서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라는 말이다. 이 성경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스라엘에게 말씀하고 있다.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율법 아래에 있어서『예수 그리스도를 모른다』 라는 말이다.
요한계시록 3장 5절에서 사데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시인하지 않겠다』라는 말씀이다. 흰 옷을 입지 않은 자는 예수님을 부인한 자와 같다. 교회를 나오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권능도 행하고 선지자 노릇도 하는데,『의의 옷을 입지 못한 자』라는 말이다. 마태복음 10장 32-33절에서『부인하리라』는 말과 동일하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사도바울이 말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해 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여전히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은 예수님이 하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큰 권능을 행하던 자들에게 예수님은『불법을 행하는 자들아』라고 하신 이유는 율법을 행하면서, 예수 이름으로 권능도 행하는 사람에게『적용하고 있는 법이 맞지 않다』라는 말이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율법으로 적용해야 하고, 예수 믿는 자는 성령의 법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율법을 행하는 자가 성령의 법에 적용받으려고 하니 불법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불법을 행하는 자』로 말씀하는 것이다. 그리고 율법을 적용받는 자에게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율법에 대한 불법인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서 열심히 율법을 지키려고 한다면 바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불법을 행하는 자가 되며, 하나님이 인정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율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율법에 대해서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것은 율법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이다. 육체로 비롯하여 나타나는 모든 것은 다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삼일만에 사신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새생명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법 아래에 있는 것이다. 바로『예수와 연합된 자요, 예수 안에 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성령의 법 아래 있는 몸은 영의 몸이다. 그리고 율법 아래 있는 몸은 육의 몸이다. 그래서 육의 몸을 부인하고, 오직 영의 몸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이 현재적으로 살아있으나, 육을 통제하는 방법은 오직 예수와 함께 죽은 자임을 날마다 고백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길이요 생명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것 외에는 구원이 없다.
이 세상에서 율법을 적용하려고 하는 자는 성령이 없다. 따라서 성경에서 말하는 율법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한다. 성령이 없는 자는 예수님이 알지못하는 사람이다.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자만이 예수님이 아는 사람이다. 성령의 법을 적용받는 사람은 반드시『예수와 함께 죽고, 예수와 함께 사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런데 죽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예수와 연합된 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율법에 대해서 죽고, 죄에 대해서 죽고, 세상에 대해서 죽는 것을 믿는 것이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다.
교회사람들이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았는데, 예수님이 부인하게 되면 교회사람들이 잘못된 것이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다 이루었다』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뜻은『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것인데, 그것을 이루었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그 약속을 이루었다』라는 말이다.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율법의 말씀이다.『율법을 다 이루었다』라는 말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 속에 있으면 율법을 다 이룬 것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지않으면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여전히 율법 가운데 거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신『다 이루었다』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 오늘날에도 안식일(주일)을 지키는 것, 십일조를 해야 하는 것 등이 율법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말은『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 라는 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과 같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승천하셨던 것은 대제사장으로서 마지막 역할을 하시는 것이다.『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께 그를 믿는 자의 죄를 모두 사했다』라는 것을 고하기 위함이다. 구약시대에 짐승을 잡아서 피를『하나님이 계신다』라고 믿는 지성소 안의 속죄소에 뿌리는데,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번제단에서 죽으신 것과 같으며, 예수님이 그를 믿는 사람의 모든 죄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는 것처럼 하나님께 가야만 하는 것이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죄』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가 죄가 된다. 왜냐하면 인간의 모든 죄를 하나님께 가져가서 속죄제사를 단번에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율법에 얽매여 있다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죄인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갈라디아서 4장 4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했다. 예수님이 율법 아래에 태어나고 율법아래 죽으셨으므로, 그를 믿는 자는 모두 이와 같은 절차가 이루어졌음을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이제 율법 위에 하나님의 우편에 함께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라는 말은 내가 육신을 가지고 이 세상에 있지만『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우편에 앉아 있다』라고 말씀하는 것과 동일하다. 사도바울이 에베소서 2장 5-6절에서『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라고 했다. 골로새서 3장 1절에서도『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니라』라고 하고 있다. 육신은 비록 전도를 위해 이 땅에 있지만,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에 앉히움을 받은 것이다. 즉 이미 안식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내가 하나님을 떠난 온 존재라는 것을 회개하고, 반드시 옛사람이 예수와 연합하여 죽어야 하고, 예수와 더불어 새생명 가운데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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