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누가복음 14장 7-11절) 청함을 받은 사람들이 높은 자리 택함을 보시고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보다 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 그 때에 네가 부끄러워 끝자리로 가게 되리라 청함을 받았을 때에 차라리 가서 끝자리에 앉으라 그러면 너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벗이여 올라 앉으라 하리니 그 때에야 함께 앉은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이 있으리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대부분 교회 사람들은 자기를 낮추는 것을 겸손한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완전히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예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는 아니다. 예수님이 잔치 자리에 높은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비유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다.『네가 누구에게나 혼인 잔치에 청함을 받았을 때에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잔치는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비유다. 초청하는 사람은 임금이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나타낸다. 청함을 받은 자는 이스라엘이며, 이스라엘이 천하만민의 모델이므로 모든 사람들이 초대된 것이다. 높은 자리에 앉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더 높은 사람이 청함을 받은 경우에 너와 그를 청한 자가 와서 너더러 이 사람에게 자리를 내주라 하리니』라고 말씀하신다. 청함을 받은 더 높은 사람은 초청한 자(임금)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다. 

요한복음 15장 13-15절에서『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그래서 친구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말한다. 예수님이 이스라엘 땅 안에서 친구라고 하시는 자가 누구인가? 세라를 포함하는 죄인들이었다. 그래서 상석에 앉고자 하는 자는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누가복음 18장 14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세리가 먼저 의롭다 하심을 받고 내려갔다는 것이다. 자기를 높이는 자들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다. 자기의 의를 높이는 자들이다. 자기를 낮추는 자들은 죄인임을 깨닫는 자들이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 12절에서『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라고 바리새인들에게 저주의 말씀하셨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고 있으므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의로운 자라고 생각한 것이다. 자기를 높이는 자는 말석으로 떨어지고, 예복을 갖추지 못하면 결국 어두운 곳으로 쫒겨난다. 자기를 낮추는 자는 하늘을 우르러 보지도 못하고 가슴을 치며, 죄인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마태복음 5장 20절에서『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므로서 스스로 의롭다 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들인데, 그들보다 더 의로워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래서 교회 사람들이 최선을 다해서 믿음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로마서 1장 21절에서『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고, 그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라고 하는데, 그들은 하나님 백성이라고 말하면서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리새인들의 의는 자기 의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가지는 자기의 의보다 높아지는 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다.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얻기 위해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를 낮추는 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에게 들어가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 성화되도록 노력하고, 날마다 자신을 성찰하여 죄를 짓는지 살펴보면서 거룩한 생활을 하고자 하는 그런 것들이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오직 죽은 자같이 되는 것 뿐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는데, 자기를 높이려 하는 것이다. 

바리새인과 세리를 비교하면, 세리는 의롭다 하심을 위해서 한 일이 없었다. 오직, 세리는『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의를 얻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리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일들이 계속되었다. 노아의 홍수 이후 인간들이 다시 번성하기 시작했으며, 하나님은 한 민족을 택하여, 율법을 주시고 자기의 의에 빠진 자들을 깨닫게 해 주셨다. 율법을 철저히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되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율법을 지키다가 자신들은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자가 되어보겠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모습은 이 세상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가지 형태로 노력하여 자기가 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생각들이 사탄이 생각을 통하여 주는 것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는 율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된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를 이루겠다고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이렇게 고백하는 자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가가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 430년간 가두었다. 고통스럽고 괴로운 상태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것이다. 애굽에 갇힌 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에 갇힌 것과 같은 개념이다. 율법을 지키려고 하다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것임을 고백하고 부르짖고, 그리스도를 찾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의 뜻은 스스로 할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회개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아들을 믿는 자마다 돌아가게 된다. 아들을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의미다. 자기의 의를 내세우는 모든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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