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몸과 영의 몸


(마태복음 1장 18-20절)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했다고 한다. 그 당시 약혼은 결혼과 같아서 법적인 구속력이 있었다. 즉, 그 약혼은 간음이 아니고는 결코 파혼할 수 없는 사실상의 기혼상태였다. 그런 이유로 요셉과 마리아를 본문에 남편 요셉, 아내 마리아라고 소개하였던 것이다. 그 약혼기간은 대략 1년 정도였다. 만약 그 기간 중에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과부가 된다. 동거는 안 할지라도 결혼한 상태와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 기간 중 부정을 저지르면 간음으로 간주되어 죽음의 형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신명기에 여자가 부정을 저질렀을 경우 돌로 쳐죽여야 한다는 율법 조항이 있기 때문이다. 

성령으로 잉태되고, 태어나는 것은 창세기 1장에서 설명하는 인간창조와는 다른 창조를 말한다. 창세기 2장 7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생령으로 번역된 이 말은 혼이다.(kjv) 아담은 이렇게 태어났다. 그런데, 하와는 다르게 태어났다.『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창세기 2장 21-22절) 하와는 아담을 통해서 태어난 것이다. 원래 하나였던 아담(첫사람)에서 하와가 분리되므로 아담은 남자가 된 것이다. 예수님의 태어나심은 마치 아담처럼, 하나님이 흙에 생기를 불어넣으신 것과 같은 그런 이치가 된다. 예수님은 성령이 마리아의 육체 속에 들어가므로 잉태되어 마지막 아담이 되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거듭나는 자도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다시 태어나게 된다. 거듭나는 자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아니고는 다시 태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이라고 말한다. 원래 아담과 하와는 하나였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떠나 인간 속에 갇힌 영은 하나였다. 그래서 창세기 2장 24절에서『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비유했다. 인간이 거듭나는 것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일이다. 이렇게 될 수 있는 것은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성령의 능력을 믿는 자만 성령으로 잉태됨을 믿을 수 있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신 예수님의 육체는 인간의 몸에 신성을 부여하신 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죄인의 모습으로 태어나셨지만 수많은 기적을 행하시고,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과 같은 육의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셨다. (마태복음 17장 1-2절)『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누가복음 9장 29-31절에서『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 영광중에 나타나서 장차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별세하실 것을 말할새』그러나 예수님이 죽었다가 부활하실 때는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 되신 것이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갑자기 나타나시기도 하고, 벽을 통과하여 나타나기도 하셨다. 

예수님은 영을 살리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사람들은 영과 혼과 육에 대해서 잘 이해하지 못한다. 전도서 12장 7절에서『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흙은 사람의 육체가 흙으로 지어졌으므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19절에서『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영을 살리고 싶어한다. 그 전제조건은 영이 죽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은 것은『인간들의 영은 다 죽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생명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생명을 주기 위해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영생하도록 하시겠다는 것이다. 성경을 읽고 예수님께서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의 의도 즉 하나님의 뜻을 잘 이해해야 한다.『영을 살리기 위해서 왔다』라는 것은『영은 다 죽어있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말하기를『의원은 건강한 자에게는 필요가 없고 병든 자에게 필요가 있다』라고 하면서 예수님이 『내가 세상에 온 것은 죄인을 부르러 온 것이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라고 하셨다. 죄인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영생을 얻게된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죄인을 부르러 왔다든가 또는 영을 살리러 왔다든가 이런 말씀을 하실 때는『너희는 죄인이라든가, 너희는 죽은 영이라』던가 하는 전제조건이 있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도『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영의 몸은 영을 담는 몸을 의미한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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