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태복음 18장 1-7절)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세상의 관심은 크고 높아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높은 자리, 큰 자리, 또 영향력 있는 자리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누가 큰 사람입니까』라고 예수님께 물었다. 당시의 사회에서, 사람들 사이에 널리 통용되던 생각이 있었다. 천국은 아주 큰 부자, 높은 자, 영향력 있는 자를 위한 곳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그와 같은, 세상에 물든 생각을 고쳐 주시면서 천국에서 큰 자는 누구인지 나아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누구인지 이렇게 두 가지의 답을 주셨다. 천국에서 큰 자와 천국에 갈 수 있는 자는 바로 어린 아이와 같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가치와 세상의 가치가 얼마나 상충되는지를 보여주는 가르침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가치는 세상의 가치와 다르다. 세상에서는 큰 자가 중요하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가 중요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천국에서는 작은 자가 큰 자다. 그곳은 겸손한 자에게 허락하시는 곳이다. 어린 아이와 같이 약하여, 의지할 누군가가 필요한 존재가 자신임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이다. 다시 말해서 스스로 율법을 통해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들은 작은 자들이라는 것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예수님께 고백했던 세리와 죄인들이 천국에서는 큰 자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또한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라고 하신 말씀의 핵심적인 의미는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제자들은 세상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누가 큰 자인가를 물었다. 결국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세상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회개는 죄로부터 돌이키는 것이다. 죄를 지었던 사실을 고백한다고 용서받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하여, 세상에 대하여, 그 마음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어야만 한다. 그러면 주님이 죄를 그의 피로 용서해 주시는 것이다.『죽는다』는 말은 그 마음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자기 부인』이라고 했다. 사도바울의 말처럼『나는 날마다 죽노라』를 생각해야만 한다.『날마다 죽노라』는 항상 성경 앞에서 자기를 거울처럼 바라보는 것이다. 날마다는『매 순간마다』라는 말이다. 횟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를 유지하라는 말씀이다. 『자기』라는 존재는 여리고 성과 같은 거대하고도 단단한 성과 같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던 것 처럼, 성경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해야만 한다. 성경 말씀 앞에서『자기 부인』의 상황을 바라 보아야만 한다. 

예수님은 자신을 작은 어린아이와 동일시하시면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 하셨다. 큰 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누군가, 우리에게 받은 것을 되갚아줄 능력이 없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면, 그것을 예수님은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시겠다 말씀하신다. 예수님을 환영하고자 한다면 작은 자 하나를 받아 환영하면 되며, 예수님을 대접하고자 한다면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대접하면 주님께서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으신다는 것이다. 

죽어있는 영, 갇혀있는 영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작은 어린아이라는 것이다. 이 갇혀있는 영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풀어줄 수 있다면 잃어버린 양을 찾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는 것이다. 참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동시에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죽어있는 영에 대해서 관심없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의도를 모르기 때문이다. 곧 지극히 작은 자 하나를 세상의 가치를 따라 무시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업신여기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말씀을 하셨다. 마태복음 18장 10절에서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예수님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고의로 죄짓게 하거나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작은 자를 향한 주님의 사랑과 관심을 모르고 그와 같은 자를 귀히 여기지 않거나, 업신여기거나, 실족하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시면서 영원한 불과 형벌에 던져지는 것보다 차라리 손과 발을 찍어 내어버리고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낫다고 하신다. 마태복음 18장 8-9절에서는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장애인이나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라고 말씀하셨다. 

이는 예수님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손이든지 눈이든지 그 육체(육체로 비롯된 마음이든지)를 가지고 범죄하면『회개하고 용서를 빌어라』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범죄한 원인을 제거하라는 말씀이다. 그런데, 원인(옛사람) 제거는 하지 않고,『통회하고 자복만 하면 용서해 주신다』고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다. 본인들이『나는 율법과 상관이 없다』라고 주장을 해도, 율법의 존재 이유인 옛사람을 버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는지 이해를 해야한다. 율법은 죄인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하여 주셨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면 죄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안계시면 죄인이 된다. 『하나님이 인간들과 대화하고 바라본다』고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속에 함께 할 때 의인이 된다. 이런 경우에는 십계명도 필요가 없고, 율법도 필요가 없게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속에 있으므로 하나님 그 자체로서 완전해 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율법들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이 세상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마음에 성령의 인치신 자에게는 율법은 필요하지 않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로마서 8장 1-2절에서『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라고 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율법을 말한다. 정죄는 율법으로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법 적용이 율법이 아니라 성령의 법인 것이다. 살아있는 영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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