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4장 3절『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느니라』무엇을 믿었기에 의로 여겨진 바 되었는가? 창세기 15장 4-6절에서『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로마서 4장 19-22절에서『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아브람은 99세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했다. 그런데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그를 의로 여기셨는가? 단지 여호와의 말씀을 믿으므로 의로 여기셨는가? 하나님은 다시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서 그를 의로 여기셨다. 

창세기 12장 1절에서『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했다. 하나님은 새로운 환경으로 나가라는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 떠나는 것을 순종했다. 그런데, 그는 친척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상속자를 고향 사람 엘리에셀로 생각했고, 자신의 몸에서 나온 자라고 생각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고향을 떠났지만 순종하지 않은 모습을 나타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자신이 믿을만한 것에만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생각이 부딪히면 자신의 뜻대로 결정하는 것이 타락의 결과다. 

창세기 14장에서 첫번째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롯과의 소유 분쟁 때문이었다. 세례요한의 회개의 외침과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말씀은 소유에 관한 이야기다. 예수님은 네가지 밭의 비유를 하셨지만, 그 씨가 심겨져 자라지 못하는 이유는 소유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아브람과 롯과의 소유분쟁에서 13장 9절에서『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가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아브람이 조카 롯에게 다 양보하게 된다. 그러나 아브람은 전쟁이 일어나 포로로 끌려간 롯을 구출해 주는 성품을 가졌다. 회개하는 자는 먼저 자기의 주장하지 않는다. 오늘날 수많은 우상의 정체는 재물이 된다. 하나님은 이런 아브람에게 멜기세덱을 만나게 하는 영적체험을 해 주셨다. 멜기세덱은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예표한다. 

이렇게 영적 체험을 하고 또 창세기 15장 1-2절에서 하나님이 상급에 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아브람은 자식에 대한 생각은 전혀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반응한다. 자식에 대한『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환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하나님이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했는데, 롯을 데리고 나왔으며, 이번에는 고향 사람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여겼다. 그러나 하나님은『네 몸에서 난 씨로 자식을 주시겠다』고 했으며, 그는 이를 믿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두가지였다. 약속의 땅과 약속의 자녀였다. 땅과 생명에 관한 것이다. 아브람은 하나님께 땅에 관한 약속의 증거를 보여달라고 까지 했다. 하나님은 동물을 반으로 쪼개어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 쪼갠 동물 사이로 지나가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일방적 첫 언약이다. 횃불언약(반쪽 언약)이라고도 한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의로 여기셨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창세기 16장 2절에서『사래가 아브람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내 출산을 허락하지 아니하셨으니 원하건대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 내가 혹 그로 말미암아 자녀를 얻을까 하노라 하매 아브람이 사래의 말을 들으니라』애굽 여자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은 것이다.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11년 만에 발생한 사건이다. 이것은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와가 주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은 것과 같은 이치다. 아브람이 하나님과 첫언약을 맺었지만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400년 후에 애굽의 바로왕의 지배하에 히브리 백성이 있을 때, 어린양의 피를 칠한 것을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다고 성경은 말한다.『나는 애굽땅에서 너희를 건져내는 여호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출애굽해서 50일 만에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언약의 두 돌판(언약궤)을 주셨다. 이게 첫언약이다. 그러나 그들은 땅을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으므로, 모압 땅에서 새사람들에게 다시 언약을 하신 것이다. 

오늘날 부르심을 입어 교회에 와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수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얼마나 되는가?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기의 생각을 더 믿는 것이 아닌가? 요한복음 1장 12-13절에서『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장의 이야기가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같으며, 오늘날 우리와 같은 이야기다. 혈통은 이스마엘이고, 육정은 롯이며, 사람의 뜻은 엘리에셀이다. 지금까지 소개된 아브람의 믿음은 하나님이 부르셨지만, 구원받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로마서 4장에서 말해주신다. 이 사건을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에게 십자가 앞에서 베드로의 상태를 보여주셨다. 오늘날 자신의 영적 상태를 깨닫지 못하면 베드로와 같은 상태가 된다. 

구원받는 믿음은 내적 생명이 바뀌는 믿음(거듭나는 믿음)이다. 이게 의롭다 하심을 얻는 믿음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구원받는 믿음을 오직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죄를 씻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구원은 죄를 씻는 것이 핵심이 아니라, 내적 생명이 바뀌는 것이 핵심이다. 그 다음에 하나님이 죄를 씻어주신다. 이 말은 히브리 백성이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출애굽해서 광야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할 뿐, 가나안에 들어가는 생명은 단 두명(여호수아, 갈렙) 밖에 없었다. 광야에서 새생명으로 태어난 자들만 가나안으로 들어간 것이다. 내적 생명이 바뀌지는 것은 누가 주인인가의 문제다. 내가 주인인가? 예수님이 주인인가? 상황이 어려워질 때 드러나는 것이다. 결국 자기 판단대로 살아가는 자는 하나님에 대해서 타락한 자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한 적이 없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99세에 할례를 받고, 100세에 이르러서 그의 몸이 죽은 것같이 되었지만 약속의 자녀를 주신다는 하나님 말씀을 믿었다. 아브라함은 99세에서 100세 사이에 자신의 하나님께 대한 타락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할례는 세례와 같은 의미다. 육적인 죽음을 나타낸다. 옛생명은 죽고 새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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