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 1장 1-8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더라 그가 전파하여 이르되 나보다 능력 많으신 이가 내 뒤에 오시나니 나는 굽혀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 

마가복음은 가장 먼저 쓰여진 복음서다. 마가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중의 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바나바의 조카였다. 마가의 다락방에서 나타나는 마리아가 마가의 어머니였다. 사도행전 13장 5절에서 『살라미에 이르러 하나님의 말씀을 유대인의 여러 회당에서 전할새 요한을 수행원으로 두었더라』즉 바울과 바나바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수행원으로 가게 된 것이다. 요한이라는 사람은 바로 마가를 두고 하는 말이다. 마가의 또 다른 이름이 요한이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에서『바울과 및 동행하는 사람들이 바보에서 배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이르니 요한은 그들에게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고』마가가 버가에서 중도하차를 하게된 것이다. 버가는 험지인 산악지방을 앞두고 있는 지역이다. 중도하차 한 이유에 대해서 정확히 표현되지 않으나, 이를 계기로 바울이 마가를 선교 활동에 좋지 않은 선입감을 갖게된다. 아마도 힘든 선교 여행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사도행전 15장 36-41절에서『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며칠 후에 바울이 바나바더러 말하되 우리가 주의 말씀을 전한 각 성으로 다시 가서 형제들이 어떠한가 방문하자 하고 바나바는 마가라 하는 요한도 데리고 가고자 하나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자기들을 떠나 함께 일하러 가지 아니한 자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 하여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서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은 선교 여행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마가가 등장하는 것이다. 디모데후서 4장 9-11절에서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바울은 선교지에서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갈라섰던 기억이 있는데, 왜 마가를 데려오라는 것인가? 바울이 말하기를『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라고 말했다. 

베드로전서 5장 12절에서『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택하심을 함께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바벨론이라는 표현은 로마를 지칭한다. 베드로가 마가를 아들이라고 말한다. 마가는 바나바의 육적 조카였지만, 영적으로는 베드로의 아들이라 지칭하는 것이다. 마가가 베드로를 통해서 신앙적으로 성숙된 자가 되었음이 틀림없는 것이다. 아마도 바울이 이러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과거에 버가에서 중도하차한 마가가 아니라 생각한 것을 알 수 있다. 

마가는 베드로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마가의 이 문장은 베드로가 사용하는 문장과 비슷하다. 마가가 복음서를 쓰게된 경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A.D. 64년에 로마의 대화재 사건이 있었다. 네로가 방화범이라는 소문이 퍼지게 되자, 로마 정치인들이 그리스도인들을 희생양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원형 경기장에 그리스도인들을 가두어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했다. 이런 고통과 절망 속에서 작은 소책자가 사람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해진 것이다. 그게 마가복음이다. 마가복음은 A.D. 65-70년에 기록된 것이다. 고난과 절망 속에서 전해진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되었다. 

마가는 세례요한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 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해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엘리야의 영으로 태어난 자였다. 세례요한은 여인이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소개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보다 6개월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났다. 그의 삶은 자기의 소명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소명은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이『회개하라』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내 뒤에 오시는 분이 심판하신다는 것을 먼저 알리는 것이다. 그래서 물 세례를 베풀었다.『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세례요한이 준 물세례는 죄 사함을 나타낸다.『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그런데, 요한의 뒤에 이 세상에 태어나는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고 말했다.『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리라』물세례와 성령세례가 어떻게 다른가? 

물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성령세례는 옛사람(악)의 죽음을 나타낸다. 예수님은 죄의 문제 이전에 악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바로 하나님께 대하여 악이라는 것이다. 세례요한이 언급한 죄의 문제, 곧 이 세상에서 지은 죄를 자복하게 하고 죄를 씻어므로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인식시켜주었다면,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게 한 원인을 제거해주기 오신 분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이 죽으면, 모든 세상죄가 다 사하심을 받는다. 로마서 6장 1절에서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세례요한은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예수님은 죄를 짓게 하는 악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물 세례는 죄를 씻는 것이지만, 예수님이 주시는 불 세례는 악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 6장 4-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예수님이 주시는 세례에서 물은 죽음을 의미한다. 노아시대 살았더라면 물에 죽었을 자들이라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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