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누가복음 13장 18-22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예수께서 각 성 각 마을로 다니사 가르치시며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가 겨자씨이며, 누룩이라는 것이다. 여자는 그리스도의 신부를 말한다. 에베소서 5장 31-32절에서『그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아내는 교회를 말한다. 교회의 성도들이 세상에 나가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퍼지게 만드는 것이다. 가루 서 말은 세상을 비유하신다. 이 말씀은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하여지고, 확산됨을 의미한다. 

마태복음 13장 31-32절에서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천국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했다. 이 겨자씨 한 알을 자기 밭에 심었다. 겨자씨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리고 자기 밭은 바로 이스라엘을 나타낸다.

겨자씨 비유는 처음에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가 미약해 보이지만, 메시야의 죽음과 부활 이후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복음이 이방인에게 확산될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볼 때도 하나님 나라는 아주 초라하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이런 미약한 시작에 실망도 했고 절망도 했다. 그러한 그들에게 이 겨자씨 비유는 엄청난 위로를 주는 동시에 도전도 주었을 것이다. 씨 중에 가장 작은 겨자씨가 자라서 새들이 깃들일 정도로 큰 겨자나무가 되는 것처럼,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는 영적으로 성장하여 엄청나게 커질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이 겨자씨 비유를 들었을 때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 아주 작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그들도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들을 물리치시고 이스라엘을 정치적으로 강하게 만드시는 것이 하나님 나라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시작이 미약해도 마침내 겨자나무처럼 성장할 것이기 때문에 실망하지 말고 용기를 가지며 인내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겨자씨 비유와 누룩 비유는, 시작은 미약하지만 마침내 큰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그리고 그 사이의 성장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겨자씨 비유는 외부적인 성장에 초점이 있고, 누룩 비유는 내적인 변화에 초점이 있다. 겨자씨는 자라서 커지는 것이고, 누룩은 스며들어 변화시키는 것이다. 겨자씨 비유는 외부적인 성장을 보여주고, 누룩 비유는 내부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비유다. 겨자씨 비유는 마태복음 28장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과 같이,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는 복음 전파와 직결되고, 누룩 비유는 삶의 변화(옛사람의 죽음)와 연결된 것이다. 천국의 시작은 미미하지만, 외부적으로 내부적으로, 또 양적으로 질적으로 성장하여 마침내 커다란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은 진행형이다. 복음의 진행은 중단되지 않고, 성장과 확대를 계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는 계속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이다. 겨자씨와 누룩의 이야기를 보면, 이 두가지가 밭과 가루 서말에 넣어진다. 밭과 가루서말이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마음이 되는 것이다. 즉 마음에 씨가 뿌려지고, 누룩이 들어가서 바뀌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마음에 있다. 누가복음 17장 20-21절에서『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씨뿌리는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깨달을 수 있다. 씨는 약속의 씨로서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그런데 땅은 사람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땅은 흙이다. 사람의 근본은 흙이다. 창세기 3장 23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땅을 간다는 것(경작)은 씨를 뿌리기 위함이다. 사람의 마음을 간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것으로 열매를 맺기 위함이다. 

네가지 마음 밭에서, 좋은 밭을 제외한 나머지 밭은 세상에 마음을 두고 있는 밭이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밭을 말한다.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과 흑암에 갇힌 자라는 것과 생명과일이 필요한 자라는 것을 깨닫는 자가 바로 좋은 밭이다. 그래서 좋은 밭에만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하나님을 떠나게 했던 탐욕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신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같이 죽으라는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으면,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가루 서말은  마음 밭을 지닌 모든 인간의 마음이다. 이 마음이 누룩(그리스도)으로 인해서 바뀐다는 것이다. 누룩은 원래의 것을 다른 것으로 바뀐다. 즉 거듭남을 의미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이전의 것은 죽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예수님의 부활로말미암아 믿는 자도 그렇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거듭남을 정신적인 작용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거룩한 상태로 도달하기 위해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야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결국 자기의 의만 쌓을 뿐이다. 그러나 거듭나는 것은 부모로 받은 몸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박히고,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난 신령한 몸을 가리킨다. 거듭나는 것은 신령한 몸을 말한다. 

이 몸이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말하는 영의 몸이 된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연합되지 않으면 거듭날 수 없다. 예수님과 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부활생명으로 살 수 없다. 부활생명이 없으면 하나님이 주신 형상인『영』도 죽은채 그대로다.『혼』인 자기가 주인 노릇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장사되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라는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야고보서 1장 18절에서『그가 그 피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따라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진리는 예수님을 의미한다. 십자가에서 먼저 죽으시고 장사되어 삼일만에 부활하신 예수님이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으로, 새생명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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