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마태복음 27장 11-18절)예수께서 총독 앞에 섰으매 총독이 물어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명절이 되면 총독이 무리의 청원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그 때에 바라바라 하는 유명한 죄수가 있는데 그들이 모였을 때에 빌라도가 물어 이르되 너희는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하니 이는 그가 그들의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더라
빌라도란 인물은 성경에 기록된 것 외에 아무 것도 알려진 것이 없다. 빌라도는 그의 권력에 비해 사람이 우유부단한 인물이었다. 자기 양심의 소리를 들을 줄은 알았지만 그 양심의 소리를 관철할만한 인물은 못되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매우 호의적인 태도를 가졌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 판결을 내리려고 애를 썼다. 그는 예수님을 헤롯 안디바에게 보내기도 하였고, 다만 매로 때린 후 놓아주자고 제의도 했다. 그는 명절에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관례에 따라 예수를 놓아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빌라도는 군중에게 압도당해 버리고 말았다. 빌라도는 민란이 나려는 것을 두려워했다. 민란이 일어나면 이에 대한 책임을 자신이 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빌라도는 민심 수습책으로 무리들에게 만족을 주고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자신의 현재의 지위를 유지하기 위하여 양심을 져버렸다. 그가 예수를 고소하는 무리들에게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고 물었을 때 대제사장들이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고 외쳐 댔다. 이 말에 그는 예수를 방면하면 가이사 외에 다른 왕을 인정하는 모함을 받은 것이 우려되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총독으로서의 현재 지위는 박탈당하고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반역한 자로서 재판을 받을 것이다. 이에 빌라도는 서둘러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저희에게 넘겨주니라”고 했다.
예수님이 빌라도 앞에 섰을 때 재판장 석에 앉아 있었던 빌라도로 부터 맨 처음 심문 받은 내용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이었다. 이 죄목이 유대인들이 예수를 빌라도에게 고소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었던 것이다. 대제사장의 무리들이 빌라도에게 예수를 끌고 가서 고소한 고소 내용은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 바치는 것을 금하여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백성을 미혹했다는 말은 예수님이 진리의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을 말한다. 예수님이 가르치신 생명의 도를 그들은 미혹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했다고 말한 고소는 거짓말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의 시험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말씀하셨다. 다음에 자칭 왕 그리스도라 말했다는 고소는 그 날 아침 가야바의 뜰에서 행한 산헤드린 공회 재판에서 가야바의 최종적인 심문에서 찾아낸 증거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왕적인 표현이 다만 메시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사실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도 이렇게 고소한 이유는 빌라도로 하여금 이 예수야말로 가이사에 반역하려는 민란 음모의 주모자임을 은근히 암시하려는 뜻에서 한 일이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심문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인 가이사의 명을 받들어 유다를 통치하고 있는 실질적인 지배자였기 때문에 그의 왕에게 도전하는 자는 누구든지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관심은 과연 이 예수가 가이사의 왕권에 도전한 유대인의 왕이냐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빌라도에게 “네 말이 옳도다”고 대답하셨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무리의 고소한 대로 나는 유대인의 왕이니라”고 하시는 말씀이다.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현세에서의 왕권을 의미한 것도 아니며 그의 정치적인 야망을 표현한 것도 아니다. 메시야로서의 그의 위치를 천명하신 것이다. 메시야는 분명히 유대인의 왕으로 나와 있으며 다윗의 위를 이을 영원한 왕을 가리키는 것이다.
빌라도는 이 같은 예수님의 말씀에서 그가 결코 가이사에게 반역할 실질적인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빌라도가 만약 예수의 세력이 강대하여 자기 눈에 능히 그가 가이사에게 반기를 들어 유대인의 왕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사려되었다면 용서해 주려는 마음조차 가짐이 없이 당장에 유죄 선고를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빌라도의 눈에 비취인 예수의 모습은 너무나도 연약하고 초라했다. 동조자도 한 명도 없을 뿐 아니라 반란의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빌라도는 이 문제는 애초부터 종교적인 문제인 것을 잘 알고 있었으며 그들이 고소하는 내용도 종교적인 문제임을 알고 있었다. 빌라도는 이 문제는 그리스도에 대한 유대인의 시기로 말미암은 것임을 알았다.
빌라도에게 가장 기이하게 생각된 것은 피고로 서있는 예수란 사람이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많은 불리한 고소에도 불구하고 잠잠히 입을 열지 않고 있느냐는 사실이었다. 빌라도가 이를 이상히 여겨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 하는지 듣지 못하느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한 마디도 대답지 아니하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고소에 대하여 대답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그는 이 재판에서 무죄로 풀려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정죄를 받아 죽으셔야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이사야는 이사야서 53장 7절에서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고 했다.
예수님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실 필요가 없으셨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셨지만 그가 지금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의 죄를 젊어지고 그 곳에 서 계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한 재판을 받으시기를 원하시지 아니하셨다.“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그들의 그리스도인줄 알고 예루살렘 입성을 대대적으로 환영했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의 기대에 어긋난 것이다. 그들이 기다리고 원하는 그리스도는 빌라도 앞에서 재판을 받는 피고가 아니라, 이스라엘을 구원할 그들의 왕이어야 하는 것이었다. 유대인은 그들의 기대에 어긋나자 환영이 배신으로 돌변한 것이다. 이런 판국에 만약 그들의 권고를 듣지 않는다면 나중에 어떤 화를 당하게 될는지 모르는 일이었다. 유대인들 중에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출회하기로 이미 결의된 일이기 때문이다. 군중 심리는 순식간에 하나가 되었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여기 저기서 함성이 들려 왔다.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고 말하고 바라바를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려고 그들 손에 넘겨주었다.
빌라도는 판결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사형 언도가 내려졌다. 사형수에게는 사형을 집행하기 전에 채찍질의 형벌이 있었다. 로마 군인들의 채찍은 짧은 손잡이에 몇 줄의 가죽끈을 달고 그 앞부분에 작은 납덩어리로 뾰족하게 만든 뼛조각이 달려 있었기 때문에 이 채찍으로 후려치는 날이면 등뼈가 드러나기도 하며 살점이 묻어나는 경우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사형수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 형틀을 젊어지고 형장까지 올라가야 하는 것이다. 로마군인들의 잔인한 채찍이 그에게 사정없이 내려쳐진 후 이제 십자가의 형틀을 짊어지고 그 고난의 골고다의 언덕을 올라가셔야 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진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나의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만이 나의 십자가로 다가오는 것이다. 구원의 시작은『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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