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례할 팔 일이 되매
(누가복음 2장 21-40절)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예수님은 탄생직후부터 고난 중에 계셨다. 마태복음 2장 13절에서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예수님은 이집트에 피신하여 있게 된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예루살렘에 돌아온 요셉은 아기 예수를 모세의 법대로 결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을 방문하였다. 예수님께서는 탄생 후 팔일 째 되는 날에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으셨다. 그것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부과된 의무였다.
예수님은 율법이 아닌 은혜를 가지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율법에 복종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에 매여 있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자신이 먼저 율법에 흠이 없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율법에 따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율법의 완성이 되셨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의 마침이 된다.
예수님은 할례를 받고나서 정식으로 예수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결례란 남자를 낳은 산모는 33일 동안 부정하고, 여자를 낳은 산모는 66일 동안 부정하다. 이것은 인간에게 에덴에서의 죄과를 잊어버리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했다. 레위기 12장 1-5에서 언급되고 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마리아가 베들레헴에서 7일간과 33일 간 합하여 40일을 지난 뒤에 결례를 행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율법에 의해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가지고 하나는 번제로, 또 한 마리는 속죄제로 드렸다. 본래 산후결례시의 번제는 어린 양으로 드리도록 되어 있으나 가난한 자에게는 비둘기 새끼로도 드리도록 관용 조항을 두었기 때문이다. (레위기12:6-8) 이처럼 예수님은 아주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셨던 것이다.
교회사람들이 일반적으로 할례에 대해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거룩한 백성,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나타나게 하기 위해서 육체에 표시를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온전한 설명이 될 수 없다. 그러나 할례를 통해서 율법과 복음,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무엇을 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할례는 오늘날로 말하면 남자의 생식기 표피 부분을 위생상 잘라내는 것을 말한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할례를 받게 하셨는가, 그리고 받지 않으면 백성 중에서 끊어진다고 하셨는가?
창세기 17장 1-14절에서『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셨다. 심히 번성하게 되리니 언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창세기 26장 2-4절에서는 자손인 씨의 약속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약속을 이삭에게만 한 것이 아니고 아브라함에게 모리야 산 에서 약속을 한 바 있다. 그런데 씨의 약속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자마자 창세기 3장 15절에서 하나님이 여인의 후손인 씨에 대한 약속을 하셨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받으라 라고 하시는데, 그 의식 속에는 하나님의 씨에 대한 언약이 있는 것이다. 결국 영원한 언약은『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구원을 얻겠다』인 것이다. 씨의 약속이 할례 의식에 들어있는 것이다.
창세기 17장 13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내 언약이 네 살(생식기)에 있어』라고 하셨다. 생식기는 씨를 생산한다. 그 생식기인 살에 약속을 두고 할례를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내가 하나님의 그 약속을 믿는다』라고 하는 증표이다. 씨로 말미암아 장차 구원받게 될 것을 믿는 것이다. 그 약속의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라고 사도바울은 말을 했다. 이제 씨의 약속인 그리스도께서 오셨으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할례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성경에도 없는 의식을 만들어서 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이라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씨의 약속, 즉『예수 그리스로 말미암아 장차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는다』라는 고백이며 표시이다.
결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온 요셉과 마리아는 뜻하지 않게 두 명의 경건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나는 시므온이라는 예루살렘 사람이었고, 또 하나는 안나라고 하는 여선지자였다
시므온은 경건하고 의로운 자였다. 그는 고난 받는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위로가 있을 것이라는 성령님의 지시를 받은 자였는데 예루살렘에 나타난 아기 예수님을 보고는 성령으로 인해 그가 곧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게 되자 아이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시므온은 예수님이 이스라엘에 대한 위로자로 뿐만 아니라 세상만민과 모든 이방민족에게 까지 진리의 빛을 비추어 구원할 자임을 알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은 순탄하게 평안한 가운데 되어질 일은 아니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여 비방 받는 표적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또 한사람은 안나 여선지자로 그녀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인데 일곱 해 동안 남편과 살다가 남편이 죽고 난 후 오랫동안 과부로 지내면서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했던 사람이다. 그도 예수님을 보자 사람들에게 증거하였다.
베들레헴에 호적하기 위해서 갔던 요셉과 마리아는 본래 그들의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갈릴리는 앗수르에 의해 가장 먼저 점령당해 이방인들이 많이 이주해 있었던 곳으로, 이사야 9장 1절에서 유대인들은 갈릴리를『이방의 갈릴리』라고 부르며 천대했다. 갈릴리 자체는 풍부한 농작물의 소산지였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이 소작농이나 품꾼으로서 예수님 당시 때에는 과거의 반란으로 인해 1년에 200달란트나 되는 무거운 세금이 부과된 가장 빈곤한 동네였다. 나사렛으로 돌아가신 후 그가 어떻게 성장하셨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그의 어린시절은『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라고 하고 있다.
예수님은 인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은 신약성경에서 88번이나 인자로 불린다. 예수님은 메시아이며, 그분은 진정으로 인간이라는 것을 나타낸다. 인간 예수는 인간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어떻게 죄 가운데서 구원을 얻게 될 것인가를 몸소 체험으로 경험하여 인간들로 하여금 구원의 길로 이끄시는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질 것을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의 제자들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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