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마태복음 27장 45-54절)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두 강도가 등장했다. 두 강도는 인류를 대표한 죄인들의 모습이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죄인임을 말씀하고 있다. 두 강도의 경우는 바로 죄 값은 사망임을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이 두 강도가 인류의 죄를 말해준다면 우리 인간에게는 절대로 의인이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두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인류가 두 길로 갈라진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두 강도에 대하여 누가 좌 우편에 서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편의상 구원받은 강도에 대하여 오른편에 있었던 것으로 말하고 있으며 멸망 받은 강도를 왼편에 있었다고 말한다. 왼편에 있는 강도는 율법의 정죄를 받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보여 주신 것이다. 율법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정죄하지 못하지만,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우편 강도는 처음에는 예수를 욕하고 비난했지만, 회개하여 구원을 맏는다. 우리도 영원히 정죄 받을 강도 같은 자들이지만, 이처럼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힐 때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 모든 인류는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이 세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들의 갈 길이 어느 길인가에 대하여 사망의 길이든지, 생명의 길이든지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길을 선택해야만 한다.
두 강도가 죄를 범한 일은 일치했다. 그리고 십자가형에 사형 언도를 받은 일도 같았다. 또 그들이 처음에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비방한 일까지도 마찬가지었다. 그러나 이 두 강도는 운명의 최후의 순간에 그들의 길이 나뉘어지게 된 것이다. 왼편쪽 강도는 끌까지 죄인임을 회개하지 않았다. 이 강도는 예수에 대한 비방과 조롱이 죽기까지 계속되었다.“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이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주어졌지만 스스로 거절하고 멸망의 길을 택했다. 이 세상에는 이 강도처럼 예수를 믿을 기회를 스스로 거절함으로 사망의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은 것이다.
오른편 강도는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그리스도에게 자기 인생을 의뢰했다. 이 강도는 그 한편 강도와 동일 범이요 그와 함께 예수를 조롱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얼마 후에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의 말씀을 듣는다. 그는 좌측 강도에게 “네가 통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라고 말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바라보고 회개했다.
우편 강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회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자신이 왜 이 세상에 있는지를 깨닫고 탕자의 비유처럼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 것이다.
우편 강도는“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그를 향하여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다. 믿음은 오랜 세월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 위에 세워진 십자가 위에 못 박히신 채 달려 서 고통은 날로 더 심화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고통 중에서도 예수님은 자기를 해롭게 한 무리들을 바라보시며 아버지께 자비의 기도를 드리셨다. 갑자기 세상이 어두워졌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놀랜 나머지 어찌할 줄을 몰라했다. 그런데 그 어두움이 걷힐 시간이 이르게 되었을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주님의 고통의 외치심이었다. 인류의 역사가 있어온 이래 이처럼 애절한 고통의 외침이 있었겠는가? 이 고통의 부르짖음은 아직까지도 온 세상에 메아리쳐 올려 퍼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들려오는 이 주님의 고통의 외치심을 듣고 회개하고 그 주님 앞으로 돌아와야 하는 것이다.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다. 에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시간은 제 삼 시였다. 이 시간은 오늘날 시간으로 오전 9시를 가리킨다. 그리고 세 시간이 지난 후인 제 육 시(12시를 가리킴)에 이 세상에 어두움이 임한 것이다. 그리고 이 어두움은 세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제 9시에 걷히게 되었고(3시경) 그 때 주님이 운명하셨다. 이 어두움은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킨다. 하나님은 그 아들을 향하여 무섭게 진노하셨다. 이 하나님의 진노는 곧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골고다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겨냥하여 죄인들에 대한 진노의 심판을 퍼부으셨다. 그는 지금 하나님의 아들로서가 아니라 온 죄인의 죄를 대신 젊어진 온 인류의 죄의 대표자로서 이 진노를 당하고 계셨다. 하나님은 이 같은 진노의 심판을 그 아들에게 부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자를 구원해 주신다.
제 6시부터 제 9시까지 계속된 어두움이 가실 즈음인 그 시간에 예수님은 큰 소리를 질러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외치셨다고 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이다. 그러면 어찌하여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는 그의 아들을 버리신 것인가? 그것은 십자가 위에 달리신 그 아들을 아들로 보신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 보셨기 때문이다. 예수는 죄인으로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으신 것이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와 함께 심판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이 이처럼 그의 아들까지라도 버리실 수 있었던 것은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들에게 대한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사랑을 베풀지 않으신다. 오직 회개하여 예수님과 함께 죽는 자에게만 사랑을 베푸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의 운명하심과 함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겨진 일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소 휘장이 찢겨진 일은 이제는 구약적인 희생 제물은 필요 없으시다 는 하나님의 선언이시다. 예수님이 죽으신 직후 일어난 사건은 성소 휘장이 찢어진 일만이 아니다. 땅이 진동하여 바위가 터지는 지진이 있었고 무덤들이 열려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나는 일도 생겼다. 무덤이 열려 자던 성도들의 몸이 많이 일어난 사건은 놀라운 일이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이시며 그 다음에 부활하는 자로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자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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