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누가복음 12장 54-59절)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 그가 너를 재판장에게 끌어 가고 재판장이 너를 옥졸에게 넘겨 주어 옥졸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네게 이르노니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갚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고발하는 자는 사탄이다. 사탄이 항상 참소한다. 무엇을 가지고 참소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법을 통해서 참소한다. 하나님의 법은 율법을 의미한다. 즉 율법(모세의 법)을 근거로 고소한다. 고소하는 것은 반드시 법의 근거가 있어야 한다.
『화해하기를 힘쓰라』는 말은『고소가 안되게 하라』는 말이다. 『법에서 해방되다』는 의미이다. 사도행전 19장 12절에서『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니라』에서『떠나더라』는 말은『해방되었다』는 뜻이다. 

히브리서 2장 15절에서도『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 평생 매여 종 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라』여기에서도『놓아준다』는 말은『화해한다』는 말이다. 고소할 수 없는 상태가 되게 하라는 말이다. 즉 율법을 가지고 고소를 당하게 되는데, 고소를 당하지 않으려면 율법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급히 화해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갈라디아서 4장 4-5절에서『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즉 율법 아래에 나시고 율법에 의해서 죽으심을 당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을 율법으로 부터 해방시켜 주신 것이다. 부활하시는 것은 율법과 상관없이 율법 위에 부활하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예수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는 것을 믿는 것이다. 

로마서6장 3-6절에서『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속량하는 방법은 로마서 8장 1-4절에서 말하고 있다.『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다. 율법의 요구는 의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를 이루어주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율법에 대해서 죽으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실 때 마태복음 3장 15절에서『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세례를 받을 때 물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죽는 것을 의미한다. 세상죄를 다 지고 가므로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다.『율법의 요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마암아 성취되었다』는 말은『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이 이루어진 것』을 말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이 없는 것이다. 

로마서 4장 15절에서 사도바울이 말한다.『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율법이 없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 안인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결코 율법으로 정죄함이 없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자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 아니다. 

사도바울은 율법과 죄가 있는 인간과의 관계를 설명했다. 사도바울은 율법의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사도바울이 율법 아래에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전혀 흠이 없고, 의인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바울이 로마서 7장 9절에서『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라고 했다. 율법으로 열심이었을 때는『자기는 살았고 의인이었다』라는 말이다. 그런데 율법이 어떤 것인지 깨닫고 나니까(계명이 이르매),『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라는 것이다. 죄가 드러나니까『의인이 아니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는 말이다. 사도바울과 같은 율법주의자가 얼마나 율법을 근거로 의롭게 되려고 노력했겠는가, 삶 자체가 율법을 거스려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살았으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사도바울은『율법이 말하지 않았으면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유대인들에게『너희가 형제를 미워하지 말고,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겠으나, 형제를 보고 미워하면 이미 살인하였느니라』라고 했다.『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그 마음에 간음을 했다』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갈 때, 바리새인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 제자들을 따지는 것이다.『당신의 제자들은 왜 손을 씻지 않고 먹는가』라고 물었다. 예수님이『먹고 뒤로 나가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않고 사람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라』고 대답하셨다.

『사람의 생각,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악한 생각들이 인간을 악하게 하는 것이지 먹는 것은 더럽게 하지 않는다』라는 말씀이다.『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라는 율법의 규정이 없었다면『내가 탐내는 마음이 있었는지 모른다』라는 말이다. 사도바울도 그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도바울이 생각해 보니 자기 속에 그런 마음이 있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 탐심이 내 속에 있으므로 욕심이 나를 끌고 내려가서 율법으로 가는 것이다. 율법에『탐내지 말라』라고 했는데, 내가 탐내었으니 죄라는 것이다.

사도바울이『죄가 없는 자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율법을 바로 깨닫고 나니까, 『나는 율법 아래에 있는 벗어날 수 없는 율법에 매여있는 죄인이로구나』라는 말이다. 사도바울이 탄식하며『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라고 독백하는 것이다.『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사도바울이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사도바울과 같은 율법의 열심인 사람이 그 율법이 말하는 바를 깨닫고 나니까, 내가 이 율법 아래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전혀 없다 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런데 그 고백 가운데, 말하고 있는 것이『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감사하노라』라고 말하는 것이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