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마태복음 23장 23-28절)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눈 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 

말라기3장 6-12절에서 십일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한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오늘날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신명기 18장 15-22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는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 형제 중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세우겠다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소리를 듣고 그렇게 말씀하시고,『그의 말을 들으라 듣지 않으면 벌을 내리겠다』고 하셨다.『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않은 말을 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그 선지자가 하나님의 지시대로 말씀하는지를 어떻게 아느냐』라고 물으니,『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니라 방자히 한 말이니 두려워 말찌니라』라고 하셨다. 

선지자가 자기 스스로 방자히 말한다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구약성경에 예레미야와 하냐나(거짓 선지자)의 말이 소개된다. 하냐나는 거짓 말을 하다가 죽었다. 오늘날에도 자기 소견대로 성경을 해석하여 말한다면 방자히 말한 것이다. 오늘날에도 십일조에 대해서 많은 교회들이 자기 생각대로 말하는 것을 본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셨다.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것은 율법에 근거한다. 레위기 27장 30절에『그리고 그 땅의 십분의 일 곧 그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열매는 그 십분의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의 성물이라』라고 했는데, 오늘날 십일조의 근거를 이 규정에 근거하여 찾기도 하고 율법 이전에 아브라함이 전쟁 후 멜기세덱에게 바쳤다 라든가 야곱이 서원한 기원을 찾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나름대로 생각해서『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였다』라고 한다면 바로 방자히 말한 것이다. 구약시대 율법으로 말한 것 외에는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내라고 하신 적이 성경에는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에 근거하여 십일조를 내라고 하셨는데,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는『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예수님이 십일조는 율법에 근거한다고 하셨다. 따라서 십일조는 율법에 따라 행한 것이다. 하나님이 율법에 따라 십일조를 바치라고 하신 이유는 레위기 25장 23절에서 찾을 수 있다.『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에 대하여 나그네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그네, 우거하는 자(외국인)이므로 땅의 소산을 하나님께 십일조(소작료)로 드려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 세상에 나그네로 있으므로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레위기 25장 42절에서『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들이니 종으로 팔지 말 것이라』 레위기 25장 55절에서는『이스라엘 자손은 나의 종들이 됨이라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내 종이요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라고 했다. 하나님의 땅에 종(품꾼)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땅을 경작하는 자들인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증거했는가 살펴보아야 한다. 히브리서 11장 13-14절에서 보면『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이 사람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의 조상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본향을 찾는다고 했다. 왜냐하면 이 땅에 대해서 나그네이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가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인데, 히브리서 11장 15-16절에서는『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아브라함의 고향이 갈대아 우르라고 생각했다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겠지만, 고향이 갈대아 우르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이므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사모한다는 말이다. 

왜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 하나님의 나라인가? 하나님으로 부터 왔기 때문이다. 그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십일조를 내라고 한 것이다. 오늘날 십일조를 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너무도 모르는 결과다. 하나님 나라가 본향이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바라보았다는 것이다. 그 약속이 바로 씨(그리스도)의 약속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십일조를 통해서 씨의 약속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나그네라는 것을 깨달으면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서 살고 있다는 의미가 무언인지,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구약에서의 십일조는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라는 것을 깨닫고 드리는 십일조를 의미한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다시 십일조를 설명하고 있다. 『너희들은 십일조를 철저히 했지만 정작 율법이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다』고 말씀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과거의 사실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율법이 말하는 바 의와 인과 신에 대해서 정확히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의는 죄인에 대해서는 가두는 것을 말한다. 땅에서는 나그네이며, 하나님으로 부터 왔으나 이 세상에서는 흑암에 갇혀있는 인생들이라는 것이다. 흑암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의다. 모든 인간들이 갇혀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하나님께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할 것이다. 인은 긍휼을 말한다. 율법에는 긍휼과 자비가 있다. 갇혀있지만, 하나님이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 떠난 것을 깨닫고 길을 찾을 수 있는 긍휼을 주신 것이다. 신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갇혀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 바로 율법인 십일조 안에 있다 라는 말씀이다. 십일조를 내면서 약속을 깨닫고 믿음을 가지는 것이 십일조의 의미를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런 것들을 다 버렸다는 것을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이다. 십일조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뜻이 담겨져 있는데, 그리스도를 발견하지 못했으므로, 예수님이 마태복음 23장 23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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