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로마서 1장 8-16절)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내가 그의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크게 두 단락으로 구성하여 설명하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은 로마 교회 교인들을 향한 감사와 기도 그리고 로마를 방문하고자 하는 바울의 심정을 밝히는 내용이다. 그는 로마교회를 한번도 방문하지 못했지만 마치 자신이 일하다 떠나온 것처럼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그러한 일들을 소망했고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런 감사와 기도는 자연스럽게 바울의 복음전파의 사명으로 이어진다. 

둘째 단락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에 대해 본격적으로 해설하는 내용이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고 했다. 그 같은 표현은 당시 헬라 문화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사람들을 나타낸 말이다. 네 부류라고 할 수 있지만 실은 두 부류의 사람들로 압축할 수 있다. 즉, 헬라인을 지혜 있는 자로, 야만인을 헬라 문명을 받아 들이지 못한 지혜 없는 자로 볼 수 있다. 바울이 그런 말을 한 것은 그들 모두에게 빚진 자 로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취지다. 

바울은 로마를 몇 번이나 가려고 했다. 그러나 번번히 길이 막혔다. 로마를 방문하려는 목적은 단순히 여행이나 하려고 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신령한 은사를 나눠주어 그들을 강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어떤 신령한 은사란 바울이 이미 소유하고 있는 은사로 특별히 복음에 관하여 분명하게 가르치려고 했던 것이다. 로마교회는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혼합교회로, 두 그룹간의 갈등은 필연적이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복음이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믿음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고 했던 것이다. 

바울이 제시하고자 하는 복음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계시돼 믿음으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한다. 그래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성도들의 것으로 인정하여 주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그 의로 말미암아 성도가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인데, 이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다. 그것이 바울이 로마에 있는 교인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으로, 곧 교회에 전하고 싶은 복음이었다.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다. 

내가 예수를 단순히 믿는다 라는 믿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믿음이 아니면 여전히 율법에 갇힌 자라고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한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계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여전히 율법 아래 있다는 것이다. 계시는 구약의 율법 속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계시하여 주고 있다. 그래서 그것을 발견해야만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도 다른 복음이 무엇인지 몰라서 율법을 지키는 행위가 성행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는 율법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나님의 율법은 분명히 존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죄인을 심판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율법으로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율법이 폐해졌는 것이 아니라, 예수임이 이미 율법에 의해서 심판받았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율법에 의해 심판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또 다시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는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된다. 율법에 의해 심판을 받은 자는 십자가에서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은 자는 율법이 그대로 적용된다는 말씀이다. 그래서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니라, 시내산의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다른 복음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 행하는 많은 것들이 율법적인 것이 포함되어있다. 

구원을 얻는 복음의 출처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1장 1절에서『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말한다. 특히 갈라디아서 1장 12절에서『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그러므로 율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선지자였으며,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계시로 받은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도 하나님 말씀을 받기 위해서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으로 부터 직접 계시를 받는 것이다.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지 않은 사람들은 사람들에게서 난 것이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된다. 
사람들로부터 받은 말씀은 세상에 있는 이야기들이다. 많은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말씀보다도 세상의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래서 기복신앙이 자리 잡는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빌립보서 3장 7-9절에서『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라고 말했다. 

사도바울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는 율법학자였으며, 열심으로 교회를 핍박하였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배설물과 같이 여겨진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참 복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자격증, 학벌을 중시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과 율법을 제대로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이다. 십일조를 바치는 일이 율법이 아니라거나, 교회 건물을 성전이라고 말을 하거나 하는 일들을 통해서 보면 그렇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