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로마서 1장 20-25절)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 그것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게 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모두 그 하나님을 찾을 이유도 없고, 그 하나님 앞에 나올 이유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의 또 다른 하나의 모습은 공의(진노)라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고백하는 사랑의 하나님은 또한 진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사랑보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언급이 더 많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를 용서하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움을 나타내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절대로 죄를 그냥 용서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먼저 이해하고 그 진노에 대한 신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해야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의 진노를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도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로마서 6장에서 하나님은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하나님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셨고,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다. 진노 중에 가장 큰 진노는 십자가의 진노다. 인간의 모든 죄를 보시고 진노하실 수밖에 없으신 하나님은 그 진노를 십자가 위에 달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셨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죄를 용납하지 못하시는 진노의 하나님을 보여주심과 동시에 회개하는 인간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진노하시는 것인가?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 때문이다. 그 죄는 바로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라는 것이다.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죄는 하늘의 원죄와 땅의 원죄가 있다. 모든 원죄 속에는 탐욕이라는 악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을 흙속에 가두어 인간이 되게 했다. 그래서 혼적인 상태로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났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And the LORD God formed man of the dust of the ground, and breathed into his nostrils the breath of life; and man became a living soul.(kjv) 우리말 성경에는 생령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살아있는 혼(soul)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영이 죽어버렸다. 영이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버리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서 에덴동산(하나님 나라를 상징)을 창설하셔서, 아담을 이끄시어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게 했다. 그래서 아담의 영이 살아나서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세상에 태어난 인간을 에덴동산에 넣었지만, 에덷동산에서 태어난 하와가 사탄의 미혹을 받아 범죄하므로,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쫒겨났다. 그래서 그때 부터는 하나님이 동물의 가죽옷을 입히므로 교통하게 하시고, 제사를 통해서도 하나님과 교통하게 하셨다. 그러나 인간들은 점차 악을 행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노아의 홍수때 8명을 제외하고 다 멸절 시켰다.
하나님은 세상에 태어난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알도록 하셨다.
전도서 3장 11절에서『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하여 불경건한 삶을 살아간다. 불경건한 삶이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다. 성경은 그것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삶이 그렇게 뒤틀리고 무질서와 혼란에 빠진 이유를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어 버려두셨기 때문이라고 말씀한다.
하나님께서 내어 버려두신 결과는 첫 번째, 인간을 마음의 정욕대로 내버려두셔서 피조물을 조물주를 더 경배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세상적인 것들에 매여 산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들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내어 버려두심』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운명을 아무런 힘도 없는 피조물에 맡겨 버리게 된다.
두 번째는 부끄러운 욕심 가운데 살게 하신 것이다. 남녀의 결혼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가 됨을 말씀하셨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하는 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의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깨달아라는 것이다. 그러네 이 세상에서는 간음이 넘쳐나고 있다. 성적인 타락의 극치가 바로 동성애다. 로마서가 쓰여 질 당시에도 동성애가 있었음을 성경은 보여준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받았다고 성경은 말한다.
로마서가 쓰여 질 당시 로마는 세계의 최강국이었다. 로마의 황제들은 신으로 추앙받았다. 그들은 누리지 못할 것이 없었다. 수많은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서 살았다.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들은 동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습다. 놀라운 것은 로마의 초기 15명의 황제들 중에 무려 14명이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또한 로마의 황제를 신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공을 세운 사람들이 당시 철학자들이었다. 당시 로마의 대부분의 철학자들이 또한 동성애자였다고 한다. 사도 바울은 오늘 로마서를 통해 신랄하게 그들의 죄악상을 고발하고 있다.
세 번째 결과는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신 것이다. 이로 인해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되었다. 그 죄의 목록들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많다.『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왜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고 추악한 일을 하는가? 그것은 바로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두려우신 하나님을 모르게 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진노가 바로 죄인들의 머리 위까지 임하였음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이 말씀을 전하고 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또한 진노의 하나님이시기도 하다. 인간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너무도 크고 엄청나기에 진노하시는 하나님, 그러나 그 진노를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쏟으신 하나님, 하나님은 죄인들에게 하나님 나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이다.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서 돌아오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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