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의로우심을 얻어야 하나님과의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진다. 바로왕의 노예로 살던 히브리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이렇게 어려움을 당할 때 부르짖는다. 그래서 주님이 보여주신 것은『내 백성으로 나를 예배하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이게 안식이다. 안식에 들어가는 것이 회복이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이다. 주님이 안식하실 때 그 속에 있는 자도 안식하게 된다. 그래서 주님이 주인되는 것이다. 주인이 되실 때 기업을 주신다. 하나님이 없는 자는 기업을 먼저 얻고 싶어한다. 기업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고 한다. 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바로왕은 히브리 노예를 풀어주지 않는다. 바로왕의 마음을 강팍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마지막 재앙을 보이신게 하나님의 진노였다.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그러나 안에 있지 않은 자는 다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게 되는 것이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하나님은 진노하신다』가 아니라『하나님은 사랑이시라』를 생각한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인간은 스스로의 상태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계시를 깨닫는 자만 하나님은 진노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된다. 그래서 세상(애굽왕:사탄)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은 후에 애굽을 빠져 나오는 것이다. 어린양의 피를 의지하여 주님께 나가는 자만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서 세상으로 부터 구속하기 때문이다. 구속은 피값으로 자기 백성을 사탄으로부터 사는 것이다. 자기 백성은 부르짖고 예배하는 자가 된다. 어린양의 고기를 불로 구워먹은 자다. 죽은 어린양의 고기가 몸 속으로 들어가, 먹은 자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어린양의 죽음과 하나가 되지 않으면 어린양의 피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사탄)으로 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이 말씀을 전하지 않는다면 세상에 사는 의미가 없어질 것이다. 바울은『내가 복음을 위하여 제사장이 되었다』고 말한다. 제물이 없으면 제사를 드릴 수 없는 것처럼, 제물이 어린양이시고,  부모로부터 받은 몸을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그와 하나가 되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부모로부터 받은 몸이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릴 때, 하나님으로부터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게 된다. 이게 예배고, 복음을 전하는 길이다. 거듭나는 것이 부활이고, 예수님이 부활의 첫열매이신 것처럼, 거듭난 자도 열매가 되는 것이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옛것이 죽어야만 일어나는 일이다. 예배는 옛것의 죽음을 확인하는 일이다. 이게 영적예배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일이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면 로마서 5장 2-3절에서 말하는 바가 된다.『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우리가 로마서 4장 25절의 말씀을 생각한다면 환난 중에서도 즐거워하지 않을 수 없게된다.『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모든 죄가 예수님에게로 전가되는 것이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그렇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어린양과 하나가 되는 일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힌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게 된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그래서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자가 된다. 이게 실재가 되어야 한다.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됨을 믿어야만 한다. 부모로부터 받은 옛생명은 예수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것을 실제로 믿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평강을 얻게 된다. 

만일 실제적이 아니라 마음의 상상으로 그렇게 믿는다면, 예수를 세번 부인한 베드로처럼 육의 마음이 믿는 그런 상태가 된다. 내가 믿는 믿음은 어려운 상황 앞에서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율법아래 갇힌 자가 된다. 베드로는 온갖 기적을 다 경험하고, 예수님에게『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을 해도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버렸다. 믿음은 실제 상황이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서『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믿음의 실상은 회개한 자에게 일어나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된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받았다고 생각할지라도, 믿음의 실상이 없다면 다 예수를 버리는 삶이 될 것이다. 마음의 상태가 아니라 거듭난 실제상황이 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 사람들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지만 결국 자기의 생각과 의지를 더 믿는 것이다. 왜냐하면 거듭남의 실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자기를 신뢰하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거듭남의 실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자기가 바로 부모로부터 받은 육에 의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 믿음을 가진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마지막 만찬에서 떡과 잔을 나누어 주었다.『이 떡은 너희를 위해 찟겨지는 나의 몸』이라고 했다. 떡을 먹은 자는 떡과 하나가 된다. 몸이 주님의 것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이전의 몸은 부인되어야 한다.『이 잔은 너희를 위해 흘리는 나의 피라』고 했다. 떡을 먹은 자를 위해 흘리시는 예수님의 피가 된다. 떡을 먹지 않은 자는 그런 은혜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누가복음 22장 19-20절『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그와 같이 하여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구 언약은 할례로서 약속의 씨를 말하나, 새 언약은 세례로서 약속의 씨로 인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는(부활하는) 것이다. 할례는 몸을 베는 의식이다. 육적 몸을 벗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례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물은 베드로전서 3장 20-21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부모로 받은 육이 장사되는 것을 나타낸다. 실제상황으로 믿어야 한다. 

구원은『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가 되어야만 한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여기서 『내가』라는 말이 혼동을 주지만, 앞의『내』는 부모로 받은 육의『내』이지만, 뒤의『내』는 하나님이 주신 신령한 몸을 말한다. 비록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로 이 세상에 살지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다. 물에서 예수와 함께 장사지낸 자만 이 믿음을 받는 것이다. 죽지 않은 자는 자기의 의로 믿는 믿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구원은 자기를 부인하는 삶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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