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로마서 7장 7-12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니라. 많은 사람들은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율법을 지키므로서 죄를 짓지 않게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아주 이중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율법을 지키지 못하면, 인간은 죄인이 되며, 결국 의에 이르지 못할 수 있다』는 애매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을 믿지만, 죄로 인하여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탐심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죄다. 탐심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것이다. 창세기 4장 7절에서『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죄의 소원은 하나님 말씀을 벗어나서 육체가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하는 것이 죄의 소원이다. 탐욕에 대해서 신명기 5장 21절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나니』탐욕이 인간의 마음 속에 존재함을 나타내는 말이다. 마음 속에 탐욕이 있으면 이미 열번째의 계명을 어긴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겉으로 탐욕을 나타내지 않으면 죄를 범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인간의 마음 속에 탐욕이 있는데, 탐욕이 있는 것 자체가 죄라는 것이고, 곧 인간은 죄인일 수 밖에 없다 라는 말씀이다. 다만 율법이 죄인됨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 속에 탐심이 변형된 각종 추악한 마음이 존재한다. 그래서 이 마음들이 율법을 통해서 죄의 모양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죄가 죽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법이 없으면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법이 있으면, 죄가 살아서 나타난다는 말이다.
로마서 5장 13절에서『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었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마음 속에 죄가 여전히 있는데, 죄가 드러나는 것은 율법으로 인한 것이다. 그래서 율법은 죄를 드러나게 하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5장 20절에서『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이것을 깨닫는 자가 은혜가 된다. 갈라디아서 3장 19절에서『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하여진 것이라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인간은 죄를 깨닫지 못하므로 더욱 죄가 가중되는 것이다.
『전에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도다』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백성들이 죄인임을 알려주시고자 함이었다. 즉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난 상태임을 알려주시는 것이다. 곧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다. 하나님 말씀에서 벗어나는 것이 죄라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바라보므로, 죄가 나타나게 되고, 죄가 나타나게 되므로 하나님 앞에서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이 없었을 때는 우리가 죽은 자임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율법을 통해서 죽은 자임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로 보건대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여기에서 『이로 보건대』라는 말은 율법이 들어오기 전에는 죄가 죽었지만, 율법이 들어오므로서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율법이 그것을 깨닫게 해주시므로 율법이 거룩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잘 지키면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 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날에도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잘 살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한다면, 스스로 마치 의인이 되어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의인이 되는 것은 내가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로마서 6장 7절에서 처럼,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그렇게 해주신다. 성경은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라고 하는데, 사람들은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이다. 율법을 통해서 죄를 짓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결국 율법 아래 있는 자가 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자가 된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될 것인가 아니면 죄 때문에 죽을 자가 될 것인가? 해답은 로마서 6장 7절의 말씀이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율법이 없던 시절에도 사망이 왕노릇한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죄때문이다. 죄가 있으므로, 즉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사망한다는 것이다. 다만 율법이 와서 그것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다. 『율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라』죄가 없는 것이 아니라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지내다가 율법을 보므로 죄인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함이었다. 율법이 없었으면, 모든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알지 못한채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다.『율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가 적용되는 것이다. 결국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시는 것이고, 하나님을 떠난 자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라는 것이었는데, 거의 대부분 이를 깨닫지 못하고 멸망당하고 말았다.
탐심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가 된다. 탐심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탐심에 대해서 죽기 위해서는 예수와 함께 죽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을 떠난 존재는 탐심의 대변인인 내가 존재한다. 누가 주인인가? 나인가 예수님인가?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다. 내가 살아있다면 탐심이 존재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 앞에서 내가 있다는 것은 죄가 죽지 않고 그대로 있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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