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로마서 7장 13-22절)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도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사도바울이 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말했는가? 자기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라는 존재가 예수와 함께 죽으라는 것이다. 죽는 것은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7장 4절에서『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의해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율법이 폐하여진 것이다.
에베소서 2장 15절에서『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골로새서 2장 14절에서도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율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나, 다만 예수와 함께 율법에 의해 죽은 자만 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기 위함이었다. 율법에 의해 죽은 결과가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세상에 살고있는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와 율법으로부터 벗어난 자들이다. 율법에 적용받는 자들은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난 자는 세상에 대해서도 못박혔다고 말한다.
로마서 7장 13절에서『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라』율법이 죄를 깨닫게 해 주므로 선한 것이라고 했다. 율법이 선한데, 왜 폐하여야만 하는가?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죄로 인해서 사망에 이르게 되었음을 나타내준다. 죄에 대해서 무감각했는데, 율법을 통해서 죄가 드러난 것이다. 죄는 하나님을 떠난 것이 죄다. 죄를 깨닫는다 라는 말은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을 떠난 것을 깨닫는 원리는 죄인(영)이 바로 육체 안에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된다.
육체를 입었다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이 세상에 오게되어, 나그네로서 살고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절에서 사도바울이『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라고 말했다. 죄를 깨닫는 자는 이런 사실을 깨닫는 자다. 세상에서 죄를 지은 것을 깨닫는 것이 죄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 육체로 있으므로, 영이 죽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율법이 알려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로마서 7장 14절에서『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율법을 지키면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육신에 속한 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육신 속에는 탐욕이라는 우상이 있어서,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전세계적으로 자신이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어리섞은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들은 마음 속에 탐욕을 스스로 제거해보려고 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다.
탐욕이 있으므로 하나님께 죄인들인데, 스스로 탐욕을 제거하여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이『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도다』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떠나 육신에 갇혀 있으므로 죄 아래 있게 되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율법을 통해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율법 안에 감추어진 약속의 그리스도를 발견하면, 그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24절에서『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율법은 깨닫는 자에게 그리스도(참생명)에게로 인도하는 교사라는 말이다. 깨닫지 못하는 자는 여전히 탐욕이라는 죄의 그물 안에 갇힌 자가 되는 것이다. 즉 여전히 율법을 지키려고 하면, 그리스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 무엇인가 행해서 의를 이루어보려고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행위를 알지 못한다. 그런데, 행위의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자신이 의를 이루기 위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육체가 원하는 것을 행하고 있는 것이다. 로마서 7장 15-16절에서『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아니하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자신이 악을 행할 때, 율법이 그것을 하지 말도록 알려주고 있으므로 율법이 선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이 선하므로 율법이 알려주는 대로 행동하면 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인간은 탐욕이라는 죄성으로 인해서 완벽하게 율법이 말하는대로 행동하는 자가 없다는 것이다. 사도바울도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을 잘지켜서 의인이 된 것처럼 생각했다. 그런데, 예수를 만나고 보니, 마음의 탐욕에 대해서 명확히 깨닫게되고, 스스로의 힘으로는 탐욕을 제거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오늘날 예수믿고 구원받았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에 비추어 자신이 죄를 짓는지 않짓는지 살펴보는 자들은 여전히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인 것이다. 율법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예수와 함께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어야만 한다. 오늘날 대부분 사람들은 율법에 대해서 죽지는 않고, 날마다 죄를 짓고, 회개(반성)하고 죄사함을 받으려고 한다. 근본적인 탐욕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임시방편과 같은 행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예수를 믿는 자가 아니라, 율법에 대해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죄인들을 율법으로 심판하는데,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전에 죄인들이었지만 예수와 함께 죽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예수와 함께 죽은 자를 새생명으로 살게 해주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새언약이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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