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로마서 7장 1-6절)『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녀라 그러나 만일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롭게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예수를 믿는다』라는 말은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님과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마태복음 16장 2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이 말은 세상에서 어떤 어려운 고난을 견디고 참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니라,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되었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죽은 자는 율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죽어야 한다는 말이다. 로마서 6장 7절에서도『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라고 하고 있다. 사도바울이 부부관계를 통해서 율법을 설명한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가 된다고 말한다. 자기 남편이 율법을 의미하고, 다른 남자는 성령을 의미하는데, 율법에 대해서 죽지도 않았으면서, 성령을 따른다고 말하므로 영적 간음죄를 짓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사도바울이 형제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한 자라는 것이다. 율법에 대하여 죽은 자는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가 된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서『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하나님께 대하여 살아있는 자는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가 되므로, 세상과는 상관없는 자가 된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라는 것을 알려주시고, 그 율법을 통해서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바라보라는 것이다. 즉 율법을 잘 지키면, 의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련한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율법 때문에 죄의 정욕이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육신에 죄의 정욕이 있는데, 율법으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것이다. 즉 율법을 범하기 때문에 죄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율법 이전에 이미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었음을 율법은 알려주신다. 율법으로 말미암아 죄가 드러나고, 사망에 처해져 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을 바울은『열매맺게 하였다』고 표현한다. 깨달았으니 열매맺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가 된다. 그래서 율법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래서 율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는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은 육신이었다.『육체가 죽는다』라는 말은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진다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여기에서 땅의 장막 집을 언제 입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창세기 2장 7절에서 하나님이 모든 인간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이다. 비록 현재적으로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결국 창세기 2장 7절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혼)라는 의미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서『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아담은 그리스도의 표상(모형)이다. 표상은 같은 것이라는 의미다. 15장 22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15장 45절을 먼저 이해해야만 한다.『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15장 22절과 15장 45절은 같은 내용이다.『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와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삶을 얻는 것은 영이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과『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을 통해서, 생령(살아있는 생명체)은『모든 사람이 죽었다』는 의미를 갖는다. 즉, 영이 죽고, 혼적인 존재로 태어났다는 것이다. 육신의 장막 집을 입었다는 것은 영이 죽은 것을 의미한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의『아담 안에서』와『그리스도 안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로마서 5장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그래서 아담 안에서 영들이 세상에 들어오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들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영들에게 육의 몸(육체의 장막 집)을 주고, 마지막 아담은 영들에게 영의 몸을 주는 것이다. 영들이 육체의 장막 집을 입으면 영이 죽는 것이다. 그러나 영들이 육체의 장막 집을 벗고, 영의 몸을 입으면 영이 살아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63절에서 말씀하고 있다.『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그리스도께서 죽은 영들을 살리는 것이다. 로마서 8장 10-11절에서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육의 몸은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연합되어야만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것이 진리의 말씀이다. 로마서 8장 3-4절에서 말하는 것이다.『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혼과 영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하며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