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로마서 10장 9-11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첫째,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둘째,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 된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것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Lord(여호와)이신 것과 주인이라는 뜻이다. 주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거듭난 자다.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주인이 된다는 뜻이다.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도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부활(거듭남)에 참여함을 믿는 것이다.
마음으로 믿는 것에 대해서 로마서 4장 19-22절에서 설명하고 있다.『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아브라함이 이 믿음을 얻은 것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란을 떠난 후 25년이라는 기간이 지나서 얻은 것을 말한다. 아브라함이 거듭난 자의 믿음을 얻은 것이 25년 걸렸다는 말씀이다. 반드시 오랜 기간이 소요되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거듭난 자의 믿음은 순종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받아 드려져야만 하는 믿음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나온지 얼마 안되는 사람에게 거듭남의 의미도 모르면서, 예수를 영접하면 다 거듭난 믿음을 가졌다고 선포해버린다는 것이다.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다 거듭났다고 먼저 선포하고, 그 다음에 거듭난 자가 행해야 할 일을 말하게 된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죄에서 떠난 생활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죄에서 떠난 생활을 하는 자가 거듭난 자가 되는데, 순서를 바꾸므로서 믿는다고 하는 사람이 거듭난 자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도, 옛사람이 죽지 않은 삶을 살게되는 것이다.
스스로 새사람이 된 것으로 생각하면서도 옛사람과 동행하는 모습을 본다.
그래서 비록 거듭난 자라도 육신의 죄성으로 인해 죄를 지을 수 밖에 없으므로 매일 예수의 보혈로 죄를 씻어야 한다는 식으로 말한다. 그 말을 듣고 매일 죄를 고백하고 용서해 달라고 비는 것이다. 이게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이 옛사람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옛사람에 대해서 죽으라고 하는데, 죽지는 않고 죄 용서는 받으려는 식이다.
예수님은 거듭난 자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는데, 매일 죄를 고백하고 예수의 피로 죄사하심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이 아닌가? 죄를 매일 용서받을 것이 아니라, 옛사람이 정말 죽었는지를 매일 발견해야만 한다. 그래서 죄가 발생하지 않도록 죄성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어야만 한다. 비록 뱀에 물릴지라도, 장대에 높이 들린 놋뱀이신 2000년 전에 예수님께서 이루어 놓은신 십자가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죄와 다시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죄와 싸워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자라고 말하면서 예수의 보혈만 강조하고 있다. 죄와 싸울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에 힘입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죽음이 죄를 이기는 길이다.
오느날 교회는 죄 용서에 대해서 거의 주문 외우듯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이다. 싸울 수 없는 연약한 자로 만들고 있다. 십자가애서 예수 그리스도와의 죽음을 피하는 것이다.
주님은 거듭난 자를 군대라고 말하는데,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연약한 자로 만든다. 가나안에 들어가면 땅을 차지하게 만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고, 들어가면 아낙자손에게 죽는다 라고 믿었던 히브리 백성들은 광야에서 다 멸망당했다. 싸워보지도 않고 미리 판단해 버리는 것이다. 누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가? 주님은 로마서 6장 7절에서 죽은 자가 죄로부터 벗어난다고 하는데, 인간은 죄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육적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육적 눈이 반응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대신 죽었다』는 것은 애굽에서 유대인들이 어린양의 피를 칠하고 장자의 죽음을 피한 후 홍해바다를 건넌 이야기다. 어린양을 죽여서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먹으면 죽음이 그 집을 지나간다는 믿음이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홍해바다를 건너서 광야로 인도받는 믿음이다. 그러나『예수님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다』라고 믿는 믿음이 아브라함의 100세때의 믿음이다.
로마서 4장 23-24절에서『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한 것이 아니요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로마서 10장에서 말하는 아브라함의 100세때 믿음이 로마서 4장에서 말하는 믿음이다. 그래서 이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다. 이 믿음으로 옛사람이 죽은 자가 부활(거듭남)의 생명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세례받는 믿음은『예수님이 내 대신 죽었다』는 것을 넘어서『예수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임을 받아드리는 자』만 세례받는 믿음이 된다. 구약에서 어린양의 죽음이 죄인의 죽음이다. 비록 죄가 전가되어 어린양이 죽었지만, 그 죄인이 죽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나의 죄를 대신하지만, 내가 죽은 것을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나의 죽으심이 연합되지 않으면, 거듭남도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 예수의 죽으심이 나의 죽음이라고 말하고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죄에 대해서(로마서 6장 2절), 세상에 대해서, 율법에 대해서 죽은 자(갈라디아서 2장 19절)라고 말한다.
의에 이르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가 그렇게 된다. 로마서 6장 7절에서 밝히 말하고 있다.『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죽은 것같이 되었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다. 노아의 시대 방주에 들어가면 산다는 것, 히브리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다는 것, 아브라함이 100세가 되어 죽은 것같이 되었을 때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 이 모든 것이『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을 때, 함께 부활시켜 주시겠다는 것』을 믿는 믿음과 동일한 믿음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는 믿음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설령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도, 어려운 상황이 오면 믿음이 무너지고 마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 앞에 섰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두명만 가나안에 들어가면 산다고 믿었다. 회개하여 거듭난 자가 아니면 이런 믿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다 거듭났다고 선언한다. 자신이 믿기로 하면 거듭나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이 오기 전에는 거듭날 수 없는 믿음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에 의지하는 믿음은 거듭나지 않은 자의 믿음이다. 거듭나지 않은 예수님의 제자들도 십자가에 선 예수님을 다 버렸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거듭난 자만 가나안으로 들어간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는 믿음은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돌이켜 회개하는 자만 죽을 수 있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