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로마서 11장 1-12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그런즉 어떠하냐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까지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또 다윗이 이르되 그들의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시옵고 그들의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그들의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바울이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는 이유는 바로 앞 단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하나님의 진노가 언급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끊임없는 불순종과 그로 인한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가장 커다란 맥락이기도 하다. 바울이 던진 이 질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불순종했고, 하나님은 진노하셨는데, 하나님이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셨다는 말인가?” 질문에 대한 답은『그럴 수 없느니라』이다. 즉 하나님은 결단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대한 근거로, 바울은 엘리야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근거는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가 아니어도 구약성경 전체에서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굳이 바울이 엘리야 선지자의 이야기를 끄집어낸 이유에 대해서『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하되 주여 그들이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엘리야는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권력을 손에 쥔 우상숭배자들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거룩한 제단들을 헐어버리고 이제 엘리야의 목숨마저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엘리야는 이스라엘의 이 처참한 상황에 대해 하나님께 호소하고 있다. 하나님께 간청하는 엘리야의 절박한 심정이 바로 이 바울의 심정이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롬 9:1) 바울은 9장에서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동족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는 바울의 심정은 마치 오랫동안 꼭꼭 숨겨둔 내면의 깊은 아픔을 드러내는 듯한 마음이었다. 바울은 누구나 인정하는 이방인의 사도였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은 자신이 가는 곳곳마다 복음의 씨앗을 뿌렸고, 숱한 고난과 환난 속에서도 복음의 소중한 열매들을 거두어들였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성취와 승리를 열매로 거두어들일수록 바울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고통과 아픔이 점점 더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받았던 숱한 고난과 환난의 대부분은 자신의 동족인 유대인들로부터 온 것이었다. 자신이 이방인의 사도로 돌아선 것도 끊임없는 유대인들의 박해와 훼방으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신의 동족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는 깊은 슬픔으로 탄식했다. 이러한 깊은 슬픔과 탄식 속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언급하고 있다.
『그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두었다 하셨으니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이스라엘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이 가장 크게 흥왕했던 시절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였다. 솔로몬 시대 이후 통일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되었고, 분열된 이스라엘은 쇠락을 거듭하다가 결국 국호마저 역사에서 지워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러한 비극적인 역사 속에서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남은자』를 통해서였다.
하나님은 엘리야 시대에도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들을 남겨두셨고, 심지어 이방인들의 발아래 짓밟혀 나라가 멸망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남은 자를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어오셨다. 그런데 그 남은 자마저 우둔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일삼았다. 그들이 바울과 동시대를 살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바울이 탄식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이방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넘칠수록 자신의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안타까움과 탄식 또한 더 커지고 깊어졌던 것이다.
사도바울이『이스라엘은 눈이 감겨지고 이방인이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설명하는 내용이다. 누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두고『이 날들은 기록된 모든 것을 이루는 형벌의 날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방에 빛을 비추어 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것은 누가는『이방인의 때』라고 했다.『이방인이 다 구원 받을 역사가 일어날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이 차지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예루살렘은 이슬람교도들이 지배하고 있다. 이방인의 때가 차면 다시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사도바울이『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고 말한 이방인의 수와 누가가 말한『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에서 이방인의 때는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깊은 탄식과 슬픔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곧 자신의 동족을 위해 하나님께 호소하는 바울의 결론이『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그들이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풍성함이 되며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풍성함이 되거든 하물며 그들의 충만함이리요』바울은 언젠가 이스라엘이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그날을, 그래서 언젠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모두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바로 그날을 바울은 소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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