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감람나무와 참감람나무
(로마서 11장 13-24절)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하게 하여 그들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그들을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랑하지 말라 자랑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 그들도 믿지 아니하는 데 머무르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받으리니 이는 그들을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슬러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받았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받으랴
접붙일 때 뿌리가 있어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나무를 대목이라 한다. 대목이 튼튼해야 접붙이는 가지에서 좋은 열매를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는 접붙임 비유는 조금 이상하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은즉.』 원래대로라면 돌감람나무에 참감람나무의 가지를 접붙이는 것이 맞다. 참감람나무에 돌감람나무를 접붙인들 그 열매는 돌감람나무의 것이니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바울은 어린 감람나무의 통상적인 접붙임 과정이 아니라 쇠퇴기에 접어든 감람나무를 소생시키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감람나무는 일반 과일수와 특성이 다르다. 원하는 품종을 뿌리로 쓰고 병충해나 환경에 강한 야생 품종을 가지로 쓰지만 열매는 뿌리의 고유한 열매를 맺는 것이 감람나무의 접붙임이다. 그러므로 감람나무는 그 뿌리가 열매를 주관한다. 접붙임 받은 돌감람나무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을, 참감람나무는 이스라엘을 의미하고 있다.
『옳도다 그들은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스스로 높아져 자기들의 의를 내세웠던 이스라엘, 이방인들을 못마땅하게 여기고 멸시했던 이스라엘을 하나님은 꺾으셨다.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참감람나무의 뿌리가 성도들을 보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은 분명 하나님의 메시야를 영접하는데 있어서 실족하였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예로 변개할 수 없는 언약이 있고 모세의 율법과 제사와 성막을 가진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를 수많은 증거에도 불구하고 영접지 않고 이방인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내어 죽였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핍박하고 박대하고 죽이고 드디어 메시야를 십자가에 내어 죽인 것은 저희의 회복이 불가능하기까지 실족한 것이 아니다. 저희의 넘어짐으로 인하여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이 세상 어두움 속에 갇혀 있던 이방인에게 이르는 문을 열게 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신 후 지금까지 2천 년 가까이 이방인을 향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므로 어두운 세상에 갇혀 있던 수 많은 세상 사람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만세 전부터 예정되었던 그 영광의 중함과 부요함을 한량없이 누리는 은혜를 입었다. 이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과는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던 세상 나라 이방인들에게 영광과 빛의 구원이 임하므로 인하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하사 저희로 돌이켜 돌아오게 하시려는 전능자의 뜻이 숨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은 어떠하겠는가? 이는 이스라엘이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이 믿음으로 계속해서 그의 은혜 아래 거하며 어두움 가운데 있는 세상 나라의 이방인들에게 영광과 생명의 빛을 환하게 비추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기 의에 빠졌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파하였다. 소아시아와 마게도냐와 아가야와 로마에 이르기까지 편만하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였다. 바울은 어디를 가든지 유대인의 회당이 있는 곳이면 먼저 회당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였다. 그때마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를 거부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를 배척하고 핍박하고 죽이고자 하였다.
동족들이 복음을 배척하고 거부하면 그때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발걸음을 향하여 영광과 빛의 복음을 선포하고 만세 전부터 예정한대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였다. 이때 수많은 세상 나라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의롭다 함을 얻어 화목하고 부활의 새 생명을 덧입게 되었다. 바울 사도는 동족들의 끊임없는 핍박과 배척과 천대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그들의 구원을 향한 마음과 소원은 전혀 변함이 없었다. 이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잃어버린 자식이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상한 마음이다.
그러므로 어두움 속에 갇혀 있던 세상 나라의 이방인들의 구원은 유대인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은 곡식 가루와 나무의 접붙임의 원리를 통해서 이 진리를 설명하고 있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처음 익은 곡식 가루와 뿌리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희생 제물이 되사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첫 열매가 거룩하므로 그 피로 인하여 깨끗함을 받아 그의 거룩한 떡덩이가 되었고 거룩한 뿌리에 접붙임을 받은 가지 역시 거룩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영접치 않으므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나 조상들로 인하여 택하심에 관하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민족이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에는 조금도 후회가 없으시고 실수가 없으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은 순종치 아니하던 세상의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순종케 하는 긍휼을 베푸시는 것 같이, 실족하여 넘어진 유대인들에게도 동일한 긍휼하심을 얻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 순종치 아니하는데 가두어 두신 이유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위함인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비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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