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로마서 13장 8-14절)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인생은 누구도 예외 없이 본질적으로, 전적으로, 철저하게 부패한 존재가 맞다. 포장이 그럴듯하고, 속임에 능한 것뿐이지, 인간 마음의 어두움과 더러움, 그 추악함을 말로는 아무리 잘 표현한다 하여도 잘 나타낼 수도 없을 지경이다. 인생이 얼마나 영적으로 눈이 멀었고, 죄와 허물로 죽은 상태인지 자신을 선하게 할 능력도,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올 능력도 전혀 없다. 무력과 무능 그 자체이며 인생 스스로에게는 결코 소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조금이라도 양심이 있는 인생들은 고통스러운 갈등으로 아우성 칠 뿐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것이 로마서의 선언이다. 시편 51편 5절에서도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이 다윗의 고백이 로마서의 고백인 것이다.
로마서 2장 10-16절에서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분명히 인생의 처참한 상태에 대한 선언과 자백에서, 본문까지의 사이에는 무엇인가가 있는 것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이다. 로마서 8장 2절에서『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성령께서 인도하신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죄악된 자기를 부인하고,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회개의 본질이다. 회개는 십자가에서 죽을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와 함께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어린양이 비록 대신 죽었지만, 죽은 어린 양이 바로 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기 위해서는 전제조건이 있다. 로마서 6장 11절에서『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죄에 대해서 죽지 않으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다. 죄에 대해서 죽은 자는 로마서 6장 6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이 죄의 몸이 죽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날,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을 단순히『믿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 많다. 그러나 이 믿음은『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믿는 믿음』이 되어야만 제대로 된 믿음이다. 이 믿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그렇지 않고는 여전히 율법의 그물에 갇혀있는 것이다. 로마서 7장에서는 율법에 갇힌 자의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사랑은 영을 살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 서로 원수지간 일지라도, 한때는 하나님 나라에서는 한 몸을 이루는 존재들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영을 살려 다시 하나님 나라로 복귀하게 만드는 것이 곧 하나님의 사랑일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아무도 실족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며, 이 일에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2-4절에서『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우리의 장막 집은 육체를 의미한다.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은 영의 몸을 의미한다. 만일 하늘로부터 오는 집인 영의 몸을 입지 못하면, 벗은 자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고린도후서 5장 6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영이 육체에 있을 때는 하나님과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영이 영의 몸을 입을 줄 알고 있으므로 담대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서 있던 영이 물질세계에 이주해서 주와 따로 있지만, 영의 몸을 입어 주와 함께 있게 됨을 의미한다. 그래서 영의 몸으로 거듭나는 자는 주와 함께 있는 것이다. 원래 두고 온 하나님 나라의 장막을 되돌려 받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에서『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라고 표현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이 나그네라는 것을 알려주신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히브리서 11장 14-16절에서도 나그네임을 설명하고 있다.『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본향으로 돌아가는 주체는 영이다. 흙으로 된 인간이 아니라 생명체인 인간 속에 있는 영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이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떠나온 자들이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요한복음 6장 63절『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영이 흙에 갇혀있으므로 영이 죽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야만 하는데, 돌아가기 위해서는 벌거벗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가리기 위해 옷을 입는 것은 그림자다. 하나님 나라의 옷을 입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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