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로마서 15장 22-33절)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때에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아노라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나로 유대에서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로부터 건짐을 받게 하고 또 예루살렘에 대하여 내가 섬기는 일을 성도들이 받을 만하게 하고 나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실지어다 아멘 

바울은 3차 전도여행 끝 무렵 고린도에 머물면서 로마서를 기록하였는데, 이 서신에 보면 로마를 방문하여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곳곳에 묻어나 있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독교 신앙의 기본 교리를 체계적으로 설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고 또 스페인지역 전도를 계획하며 로마교회의 협력이 필요함을 알리고 싶었기에 로마를 가려고 했으며, 동시에 로마에 있는 성도들과의 교제가 바울과 그들 모두에게 큰 기쁨과 격려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에 로마에 잠시라도 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것이다. 이전에 로마를 방문할 기회가 여러 번 막혔던 것과는 달리 이제는 로마를 방문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추어져 있었다. 그런데 로마를 거쳐 스페인으로 가고 싶어 하는 바울의 계획에 앞서 중요한 일이 하나 생겼다. 이 일은 그렇게도 방문하고 싶어했던 로마를 향해 가는 길상에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 반대길인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해결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연보하였음이라.』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 방문하기를 간절히 원했고, 또 새로운 전도를 위해 스페인지역으로 가기 원했지만, 그보다 앞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기쁜 마음으로 연보한 구제금을 전달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 바울은 이 일을 성도를 섬기는 일로 표현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간절히 가고 싶은 곳과 멀어지는 반대 방향의 길이었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가야만 할 만큼 바울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성도들의 상당수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시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지 짐작할 수 있다. 왜 그들이 가난해졌는가? 이에 대한 정확한 이유를 본문은 설명하고 있진 않지만, 사도행전 11장 28절을 통해 유추해 볼 때 큰 흉년이 원인일 수 있었고,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핍박이 또 다른 원인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든 예루살렘에 사는 성도들 가운데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생계유지가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을 위해 마게도냐와 아가야 사람들이 구제금을 모았다. 그런데 고린도후서 8장에 보면, 구제금을 마련한 그들은 부유한 자들이 아니었다. 

고린도후서 8장 1-5절에서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 

마게도냐 사람들은 큰 시련과 극한 가난에 처해있던 자들이었지만, 예루살렘의 어려운 소식을 듣자 오히려 그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자원하여 간청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이런 사실을 편지에 담아 보내며 이렇게 덧붙였다.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영적인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적인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복음을 통해 영적인 부를 누리게 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 교회를 통해 복음을 나누게 하셨으니 서로 어렵고 힘들 때 도와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을 바울은 강조하고 있다. 이 일을 통해 물리적인 거리나, 이방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이라는 신분을 떠나 모두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일체감을 예루살렘 교회도, 로마교회도, 또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교회도 모두 깊이 인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사도행전 32-35절에서『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오늘날 교회와 상당히 차이가 있다. 구원은 각자의 문제로 생각하여 다분히 개인주의적으로 변했다. 왜냐하면 오늘날은 바울 서신을 중심으로 하는 교리적인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5장 1-2절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소유를 팔아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 놓았다. 그런데 5장 3절에서『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했다.『사단이 충만하다』는 말은 사단 밖에 없다는 말이다. 아나니아는 자신이 거의 90% 정도의 크리스찬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 승천하셨던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아나니아에게 말해주었고, 아나니아도 그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서 하나님을 믿게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사단이 충만하다는 말이다.

 예수를 믿는 것 자체 만으로 구원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이다. 아나니아는 영적 존재가 된 것이 아니라 여전히 혼적 존재일 뿐이었다. 아나니아는 이 말을 듣는 순간 혼이 떠났다. 사도 베드로는 아나니아 라는 사람으로부터 교회를 지킨 것이다. 당시 성령이 임하셔서 완전한 교회가 되었는데, 아나니아와 같은 하나님을 속이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흔들 것을 막은 것이다. 교회는 성령의 능력과 사랑을 통해서 성도간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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