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과 성적인 문제에 대해서


(고린도전서 7장 1-11절)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펠로폰네소스 반도에 위치한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는 해양무역과 동서양 문화의 중심지였다. 이곳은 다양한 민족과 문화, 신들의 도시였다. 바울은 2차전도 여행 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를 비롯한 여러 동역자와 고린도교회를 개척하고, 18개월간 체류하며 복음으로 교회를 든든히 세웠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도 매우 깊어서, 고린도교회는 폭발적인 부흥을 이룬다. 하지만 여러 진통도 겪었다. 분파문제, 윤리·도덕적 문제, 그리고 은사 문제 등 고린도교회는 수많은 내홍을 겪었다.

고린도의 랜드마크는 아크로고린도에 자리 잡은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신전이다. 이곳에는 1천 명의 여사제가 제사라는 명목으로 온갖 음란행위가 쉬지 않고 이루어졌다. 더욱이 항구도시에 수많은 매음굴 등에 둘러싸여 사는 고린도인들에게 바른 성 의식을 기대하기란 어려웠다. 고린도의 문란한 성문화가,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폭발적인 부흥과 복음의 능력을 맛본 고린도 교인들이지만, 그들을 둘러싼 가치관에 도전하지 못하고 무너지거나 반작용으로 금욕주의 형태의 왜곡된 성의식을 지니게 된 것이다.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누릴 온전한 한 몸 됨의 기쁨을 누릴수 있는 공동체다. 그래서 바울은 부부가 서로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한 뒤 창세기 3장 16절에서 하나님께로 부터 『네가 남편을 지배하려고 해도 남편이 너를 다스릴 것이다.』라는 저주를 받았다. 표면적으로는 오늘날을 살고 있는 부부에 대한 모습일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섬기고 서로의 필요를 채우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자기의 주장만을 하며 서로를 지배하려고 하는 모습이 전형적인 죄인의 가정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면적인 의미는 하나님을 떠난 자(아내)가 그리스도(남편)의지배를 받게될 것임을 말해준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가정에게 바울 사도는 부부가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서로를 존중하며 서로가 상대방의 권위 아래 있는 것과 같이 여기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이 정하신 범위 안에서 서로가 음행의 유혹을 받지 않도록 성적인 필요를 충족시킬 뿐 아니라, 돕는 배필로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 온전하게 하는 책임을 강조한다. 이는 육적인 의미도 있지만 영적으로 사탄으로부터 벗어나 건전한 가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됨을 말해주고 있다. 사탄은 하나님과 성도의 하나됨을 파괴하려고 한다. 

바울은 서로의 합의 하에 충분히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잠시 성적인 관계를 중단할 수는 있지만 절제력이 부족한 인간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고 음행에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고 권면한다. 그러나 이 기간을 정해서 갖는 금욕의 기간 역시 허락될 뿐이지, 명령은 아니라고 덧붙인다. 사도 바울은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 말은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이 성적인 욕구를 절제하는 은사를 받아 복음을 전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일에 전념하고 독신이 누릴 수 있는 유익을 누리면 좋겠다는 말이다. 바울은 육적으로는 독신이지만, 영적으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로서 모습을 권면한다. 육신보다 영적인 생활이 도 중요함을 강조한다. 

바울은 이어서 구체적인 지침을 전달한다. 먼저 결혼하지 않은 과부들을 향해서는 자신과 같이 결혼하지 않은 채 주를 섬기며 지내도 좋지만, 만약 성적인 욕구를 절제할 수 없고 음행의 유혹을 받는다면 결혼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다. 바울 사도가 다른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에게 동일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했던 것을 고려할 때 과부라는 표현에는 아내를 잃은 남자들도 포함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미 결혼한 사람들을 향해서는 부부가 서로 갈라서서 결혼을 깨뜨리지 말아야 하며, 만약 갈라섰다면 그대로 지내든지 아니면 이혼한 배우자와 다시 화합하라고 권면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 지어주신 부부는 한 몸을 이루며, 이혼한 배우자가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과 결혼하는 것을 간음으로 정의하셨다. 그래서 바울은 8-11절에서 이 말은 자신의 개인적인 권면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이라고 덧붙인다. 하나님을 떠난 자들은 다시 결혼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떠난 사실을 깨닫고 돌아오라는 의미를 담는다.
고린도교회는 성 문제로 대표되는 당시 시대의 시류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고린도 교인들은 복음을 받고 자신들의 그릇된 삶을 깨닫는 데 시간이 걸렸다. 

그릇된 행동을 교정하는데 뼈를 깎는 노력이 필요했다.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한 책임이 뒤따랐다. 모두가 그리하더라도 바른길, 옳은 길, 진리의 길을 걷는 이가 그리스도인이다. 아파도 슬퍼도 외로워도, 하나님이 부르신 좁은 길을 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마태복음 7장 13-14절)

구원은 좁은 길로 가는 것이다.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하나님을 떠나 사탄의 자식이 되어 이 세상에 살고 있으나,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해서 하나님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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