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고린도전서 7장 12-24절)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본문의 주제는 매우 명확하다. 본문의 주제가 되는 말씀이 세 번이나 반복되고 있다.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17절) 20절에도 가장 단순한 형태로 반복되고 있다.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세번째로 반복되는 구절은 24절이다.『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말씀이다. 그렇다면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낸다는 것은 두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나에게 주어진 삶의 환경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아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나에게 주어진 사명을 깨닫고 주님을 섬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은 교훈을 설명하기 위해 몇 가지 예를 들어주고 있다. 남편과 아내의 결혼제도를 먼저들고 있다. 이는 7장 1-11절에서 설명하는 것의 반복으로 생략한다.
그러므로 먼저 할례에 대해서 설명한다. 『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고린도교회 성도들 가운데 유대인 출신으로 할례를 받은 사람이 있었고, 이방인 출신으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함께 모여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할례를 받은 것과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을 가지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할례를 받은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유대인들이『나는 조상적부터 하나님을 섬기던 사람』이라고, 이방인을 향해서『당신이 이제 막 예수님을 믿은 사람이 아니냐』고 격을 낮추어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인으로서 할례를 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들도 뒤늦게나마 할례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에 대해 사도 바울은 명쾌하게 답을 주었다. 각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지내라는 것이다.
『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할례는 육체를 베는 것이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한다. 형식적인 할례는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는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인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율법적인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할례라는 의식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자신이 죽은 자임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무엇인가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또 하나의 예를 제시하는데, 곧 고대 로마 사회에서 노예의 신분, 종의 신분에 있는 사람들의 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어떤 자의 사회적인 신분이 종이었다. 또 어떤 자의 사회적인 신분이 노예였다. 사람들은 노예를 돈으로 사고 팔았다. 그들은 종이기 때문에 주인이 무엇을 명령하든 거역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것은 당시 사회적으로 엄연히 존재하였던 노예제도였다.
그들 가운데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믿어 구원받은 성도들이 생겼다. 그들은 고린도교회를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사회적 신분은 종이고 노예였다. 사회적 신분이 종이고 노예였던 자들, 그러나 고린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자들은 스스로를 바라보며 절망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을 것이다. 『나는 오늘이라도 주인에 의해 다른 사람에게 팔릴 수 있고 주인이 무엇을 명령하든 그것을 행해야 하는 사람인데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은총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을 향해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종이기에 노예이기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은 버리라는 뜻이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사도바울이 말하는 의미는『여러분의 처지와 형편이 어떠하든,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자유는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동시에 여러분이 제 아무리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다하더라도 바로 그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주어져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대로 살아가라는 것이다. 곧,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불평하거나 탓하지 말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내에게 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며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명을 기억하며 주님을 섬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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