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고린도전서 9장 1-17절)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고린도 지역의 일부 사람들은 바울을 헐뜯으며 그의 사도직에 대한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였다. 바울은 이러한 비판과 공격에 대해 9장에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정당성을 주장하는 근거로 두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한 가지는 자신이 부활한 그리스도를 보았다는 것과 또 다른 한 가지는 고린도인들이 자신이 전한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혹시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바울을 사도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자신의 사도직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써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인 먹고 마실 권리가 있음을 이야기 하면서 바울은 자신이 세운 고린도 교회로부터 생계에 필요한 물질적 원조를 받을 권리가 있었지만 그러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 자신도 다른 사도들 처럼 역시 결혼할 권리도 가지고 있었음을 말한다. 일함으로 인해 지원을 받을 권리를 이야기 하면서 사도들이 교회로부터 생계비를 지원 받는 것이 일반적인 권리이지만, 자신과 바나바는 그 권리 또한 사용하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군인이 급료를 받을 권리, 포도원 주인이 수확을 할 권리 그리고 목동이 양의 젖을 짜서 마실 권리를 이야기 하면서 당시 실생활의 예들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이 물질적 지원과 다른 사도들이 받고 있는 권리를 받는다 해도 어떠한 문제도 없지만 그 스스로가 그 권리를 누리지 않고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서 그가 가지고 있던 권리는 당시 다른 사도들이 실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였을 뿐만 아니라, 성경 또한 그러한 권리를 정당하게 인정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특별히 신명기 25장 4절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일을 한 것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심지어 가축도 율법에 의해 보장을 받는데 하물며 인간이 일한 것에 대해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 교회를 처음 세운 자로서 그 어떠한 사람들보다도 고린도 교회로부터 물질적인 지원에 대한 권리를 요구할 수 있음에도 그 권리를 누리려 하거나 그 권리를 주장하지 않았음을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가 이처럼 그가 가진 권리를 내려 놓을 수 있었던 것에 대한 분명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 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데 장애가 될까 봐 그가 주장할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쓰지 않았다고 이야기 한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10장 7절에서『그 집에 유하며 주는 것을 먹고 마시라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옮기지 말라』말씀하셨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나는 것으로 생활했던 것처럼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을 들은 자들의 지원을 받아 생활하도록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당시 다른 사도들이 누리던 일반적인 상황을 보더라도 그리고 구약의 말씀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가 얼마든지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부터 생활비 지원을 요청할 수 있었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바울은 혹시라도 복음을 전하는데 있어 자신의 이러한 권리가 방해가 되거나 이로 인해 시험에 들 수 있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였다.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그가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는 그의 마음가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면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즐거움이나 보람을 얻으며 자신의 만족과 유익을 위한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은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이나 만족과는 상관 없이 반드시 해야 할 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다른 사도들이 가질 수 있었던 권리, 그리고 성경에서도 허락한 그 권리임에도 스스로 그것을 포기하고 더 힘들고, 더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여 복음 전하는 일을 감당하였던 것이다. 바울은 맡겨진 일에 대해 아무런 대가를 기대할 수 없는 노예와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어떤 보상이나 대가를 요구하지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 희생하는 것 자체를 자랑이며 보상으로 여기면서 주님께로부터 받을 상은 바로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지 않으며 사역한 것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이러한 복음을 전하기 위해 희생하며 자신의 권리까지도 내려 놓는 바울의 모습은 그가 세 차례에 걸쳐 전도여행을 하면서 세운 교회들의 지도자를 세울 때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게 된다.

 바울은 장로를 세울 때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 복음을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 나이 들고 덕망 높은 연장자들을 장로로 삼아 교회를 돌보도록 하였다. 그런데 이 장로는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거나 높은 계급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교인을 위해 기도하며 겸손하게 섬김의 본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가 복음을 전하면서 마땅히 가질 수 있었던 권리를 내려 놓았던 것처럼 그가 세운 교회의 장로와 지도자들 역시 권리를 다 누리거나 권위를 내세우는 군림하는 지도자로 세우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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