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린도전서 1장 10-17절)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에서는 그리스 철학과 웅변이 발달했고, 사람들은 운동 경기를 즐겼으며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였기에, 성적인 문란과 타락을 대표하는 도시이기도 했다. 바울은 이러한 고린도 지역에서 교회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교회를 향하여 간절한 마음을 담아 고린도전서, 후서라는 두 편의 편지를 썼다. 고린도교회는 은사를 많이 받은 교회였지만 그만큼 문제도 많은 교회였다. 마치 오늘날 자본과 물질 중심주의의 현대 사회 속에서 현대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과 아주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고린도교회가 겪고 있는 문제는 현대 교회 문제의 축소판이라 볼 수가 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여러 가지 문제들 중에 첫 번째로 교회안의 분파주의, 즉 파당이 갈리는 것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모두가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고 바울은 먼저 말하고 있다.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서로 나뉘었던 것도 하나가 되며 화해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화해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하는 의미를 갖는다. 교회 안에서 형제간 화목이 바로 하나님과의 화목을 나타내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라고 말했다. 분파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먼저 바울에게 속한 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이다.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세우고 개척한 사람이다. 따라서 그들은 고린도 교회를 세운 바울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친밀한 사람들이었기에, 말하자면 고린도교회 개척 멤버라 볼 수 있다. 두 번째는 아볼로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아볼로는 탁월한 성경 해석가이자 교사로서 웅변술이 뛰어났다. 따라서 아볼로에게 속한 사람들은 세련되고 지적인 신앙을 좋아하는 사람들로 여겨진다. 다음으로는 게바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베드로는 열 두 사도 중에 기둥적인 사도였고 주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게바에게 속한 사람들은 아마도 주로 유대인들이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들이다. 자칭 그리스도에게 속했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잘 인정하지 않는 자기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성향이 강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특히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말씀을 들었다는 직통계시를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보여진다.
고린도 교회 사람들이 바울과 아볼로와 게바의 이름을 말하며 그들에게 자신들이 속해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한 사람들이다. 또한 이 세 사람은 고린도 교회의 분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대신에 고린도교회의 파당을 짓는 사람들이 이들의 이름을 들먹이며 이용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하기에 바울은『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라고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교회도 크게 카톨릭 교회, 동방 정교회, 개신교회로 나뉘어져 있다. 또한 개신교회안에도 여러 교파와 교단이 있다. 루터교회, 성공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장로교회, 성결교회, 오순절교회 등이 있다. 이처럼 개신교 안에도 여러 교파가 있어서 강조점도 다르기에, 신앙인으로서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양한 생각과 행동의 밑바탕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께서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또한 바울은 『나는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베풀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었고 그 외에는 다른 누구에게 세례를 베풀었는지 알지 못하노라』고 말하고 있다. 세례는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베풀어 지는데 여기서 이름으로 라는 표현은 그 이름에 대해 절대적으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사람이 삼위 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그 사람은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예속된다는 것이다. 만약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면 그 사람의 바울의 소유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이름으로 세례를 베푼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바울은 세례에 있어서도 철저하게 하나님만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다.

대신에 바울은 자신이 받은 소명에 대해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의 소명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헬라인들이 좋아하는 말의 지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과거 자신이 율법에 열심이었을 때 유대교 안에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사상과 지위와 기득권을 배설물로 여기고 오직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을 했던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스도의 옷은 그리스도와 합한 자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십자가에서『자기』라는 주체를 부인해야만 그리스도와 연합된 삶을 살게된다. 결국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믿음이 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자기』부인도 없으면서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율법 아래 매인바 되는 것이다. 3장 25절에서 말하는 바『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이 믿음은 온 것이다. 사람이 스스로 믿겠다고 결심한 그런 믿음과 다른 믿음이다. 믿음이 오는 것에 대해서 3장 23절에서도 말하고 있다.『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사도바울이 세례 앞에 이 믿음을 두 번이나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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