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고린도전서 15장 1-11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15장은 부활의 교리를 체계적으로 입증하고 있는 부활장으로 알려져 있다. 기독교를 비롯한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영혼불멸을 믿고 있다. 영혼불멸을 믿고 있다고 해서, 모두 육체의 부활을 믿는 것은 아니다. 유대교에서 파생된 사두개인들은 영혼 불멸과 육신의 부활 모두 부인했다. 당시 헬라인들은 영혼불멸을 믿었으나, 육신의 부활은 믿지 않았다. 그들은 영생을 육신을 벗어버리고 영혼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이러한 헬라 문화의 영향 속에서 고린도교회에는 부활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부활을 부인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부인하는 것이며, 이는 결과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부정하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실제로 십자가 사건(죽으심)과 부활은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진리가 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은 죽기 전의 몸과 다른 성격의 몸이다. 육의 몸이 아니라 영의 몸이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오늘날 부활을 마치 죽은 육체가 소생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죽기 전의 육체는 영원한 생명이 아니지만, 부활하신 몸은 영원하신 생명이라는 것이다. 몸은 몸이로되, 영원한 영의 몸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즉 복음은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것인데,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이 왜 우리에게 복음이 되는가?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말하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사실을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죽음, 곧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죄에 대한 형벌을 의미한다. 성경은 인간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들이라는 것이다. 인간이 죄인이라는 사실은 하나님의 진노 또는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심판)의 대상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에서 스스로를 구원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인간을 정죄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을 의롭다하실 길을 계획하셨다. 바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성경이란 구약을 의미한다. 구약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하고 있다. 즉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의 계시의 결과이며, 결국 복음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육신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다. 예수님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행위적으로 죄가 없으시기에 영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죽으실 필요가 없고, 성경의 에녹과 엘리야처럼 승천하실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생명을 자발적으로 내어놓으셨다. 그 이유에 대해 바울은 예수님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 인간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고 증언한다. 즉 우리가 우리의 죄의 값으로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인 죽음을 예수님께서 대속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치루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으심만으로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종결된 것은 아니다. 즉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머물러 계셨다면 복음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따라서 바울은 복음을 정의하면서 예수님의 죽으심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활을 포함했다.『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죄, 율법, 죽음으로 하나님께 대적하는 세력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죄와 사망의 굴레 속에 있는 사람들과 피조물을 향한 해방의 선포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이전의 죄악된 모든 생명이 지나감을 의미하며, 부활이란 하나님의 새로운 생명과 새로운 시대가 시작됨을 의미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대해서 사도 바울 자신 외에도 대부분 당시에 살아있는 게바,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그리고 모든 사도들을 목격자라고 밝힘으로서,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이 사도 바울 자신의 주관적인 주장 또는 신화가 아니라 지극히 객관적이고 역사적인 사실임을 밝히고 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역사적 사건이 있기에 모든 성도는 부활할 것이며,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 여기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 부활의 의미를 단순히 부활에 의한 영생에만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은 믿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게 한다는 것이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자기와 같이 악한 자가 하나님의 은혜, 로 인해 거듭나게 되어 감히 사도로서 쓰임 받게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그는 죄인 된 자신의 실체를 깨닫게 되었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죄인 된 자신을 죽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 생명을 지닌 거듭난 사도로, 어떠한 상황에 처할지라도 세상에 굴하지 않은 복음의 선포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사도 바울은 자격이라고는 전혀 없는 자신이 사도로서 쓰임 받게 된 이유에 대해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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