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보에 관하여
(고린도전서 16장 1-9절)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내가 이를 때에 너희가 인정한 사람에게 편지를 주어 너희의 은혜를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게 하리니 만일 나도 가는 것이 합당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가리라 내가 마게도냐를 지날 터이니 마게도냐를 지난 후에 너희에게 가서 혹 너희와 함께 머물며 겨울을 지낼 듯도 하니 이는 너희가 나를 내가 갈 곳으로 보내어 주게 하려 함이라 이제는 지나는 길에 너희 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머물려 함은 내게 광대하고 유효한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라
첫째 부분은 1절에서 4절까지인데 연보 즉 헌금에 관한 부분이다. 고린도교회가 헌금하는 것에 대해 자세하게 말씀하고 있다. 헌금의 시기, 헌금의 방법, 헌금의 사용 등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었다. 먼저는 헌금은 매주 첫날 즉 주일에 모일 때마다 하고, 미리 준비하여 모아놓으라고 하였다. 헌금의 방법은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하라고 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비롯하여 마게도냐 지역교회들의 가난한 교우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충성스럽게 헌금한 일을 아름다운 헌금의 사례로 소개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고린도후서 8장 12절에서 『할 마음만 있으면 있는 대로 받으실 터이요 없는 것은 받지 아니하시리라.』
고린도 교회는 헌금에 인색하였다. 바울이 헌금하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품었다. 왜 하라고 하는지, 그 헌금을 어떻게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려고 하는지 등에 대해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헌금의 사용에 대해서는 헌금한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인정한 사람들과 믿을만한 편지와 함께 직접 어려움과 고난당하고 있는 예루살렘 교회의 형제들을 방문하여 전달하겠다고 하였다. 먼 거리를 위험을 무릅쓰고 방문하여 헌금한 사람들의 진실한 사랑과 관심을 나누고 전하도록 하였다.
연보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다. 부자들과 과부가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과부가 훨씬 많이 헌금을 했다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헌금과 신약시대의 헌금은 의미가 다르다. 어떤 교회에서는『구약시대의 십일조가 신약시대는 연보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예수님은 헌금이라고 했는데, 교회 사람들은 연보라고 한다. 연보라는 말은 구약시대에서 사용되었으며, 연보궤는 구약시대에서는 보물창고, 국고창고의 개념이다. 히브리어는 리시카, 헬라어는 가조필라케오로 번역되었으며, 하나님의 성전 뜰에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 창고를 말하는 것이다. 신약시대 교회에 작은 헌금통이 아니라는 말이다.
역대하 34장 9-10, 14절에서 연보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연보궤 안에는 온갖 십일조와 헌물들이 있었던 창고였던 것이다. 히브리어의 보는『들어오다』라는 말이다. 하나님의 예물창고에 들어온 모든 것이 연보라는 것이다. 구약시대의 십일조도 연보궤에 들어있는 것 중의 일부였다. 그러니까『구약의 십일조가 신약의 연보로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은 곤란하다. 신약시대에서 연보라는 말은 구약시대의 개념과는 다르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십일조와 헌물들을 연보궤에 모아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서 그 예물을 하나님 성전 맡은 자(레위지파)와 고아와 과부를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서 처음 사용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연보라는 말을 사용하시지 않고 헌금이라고 했다. 예물은 히브리어는 고르반, 민하로 사용되었다. 사도바울은 전도를 할 때, 자비량으로 생계를 꾸렸다. 신약시대에서 헌금으로 생활비를 준다든가, 가난한 자와 과부를 도운 것이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헬라어『도론』이라는 말은 헌금으로 번역된 것이다. 헌금이라는 말도 예물이라는 의미가 많이 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헌금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사도행전에서 볼 수 있는데, 4장 32-37절을 보면 모든 무리들이 자기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 왜 그렇게 했는가? 이스라엘 사람들의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희년이 되면 다 돌려주어야 하는데, 이 때 당시에 초대교회 제자들의 생각(추정)은 예수님이『곧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했는데, 종말이 가까워진 것으로 생각하니 땅을 다 바쳐 사도들에게 바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와중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전 재산을 팔아서 바치겠다(히브리어:고르반)고 했는데, 아까운 마음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일부를 감추었다(횡령)라고 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죽어버린 것이다. 하나님을 속인 것이다.
하나님이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붙였는데, 여리고 성에서 취한 전쟁 포획물을 개인이 가지지 말라고 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바쳐지고, 불태워지는 것이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은 다 소멸되어 거룩하게 되는 것이다. 여리고성 전투에서 아간이 훔친 행위는 그 결과가 아간도 노획물과 같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 되어, 결국 아간도 하나님께 멸하여져야 되므로 아간의 가족들이 다 죽게 된 것이다. 헌금은 형편과 분수에 맞게 성의껏 기쁜 마음으로 내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연보는 고린도후서 9장 5절에서 『이러므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였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라고 말했다. 사도바울은『하나님이 주시는 참 복을 준비하라』는 말씀이다. 이는 말라기 3장 10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고 주시겠다고 하는 하늘의 복, 에베소서 1장 3절에서 말하는『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다 같은 말이다. 즉 내가 연보를 내므로 이 돈이 다른 사람에게 하늘의 신령한 복이 될 수 있다는 전제 하에서 내는 것이 바로 사도바울이 말하는 연보인 것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연보의 첫 번째 의미는 축복을 의미한다. 두번째는 로비아로서 성금 또는 기부금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가난한 사람을 돕기 위해서 내는 연보이다. 세번째는 하플로테스(순전, 정직) 순수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복을 나누어주는 마음으로 내라는 뜻이다. 사도바울이 말하는 연보는 하나님에게 바치는 그런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내는 연보를 말하는 것이다. 우리말로 연보라고 번역했지만, 사실상 성금에 해당하는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5절부터 8절인데 사도 바울의 사역 일정에 대한 사항이다. 『이는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 얼마 동안 너희와 함께 머물기를 바람이라.』마게도냐를 방문하고, 겨울을 어디에서 나고, 에베소에 얼마를 머물고 등 사도 바울은 당시 열악한 교통사정과 여러 지역의 교회 일들로, 일정대로 일들이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잠깐 지나가는 길이 아니라, 당분간 머물면서 미처 못한 이야기와 오해를 풀고 싶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일정을 이끄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또한 세운 일정이 계획대로 이루어질 수도 있고, 잘 안될 수도 있지만 사도바울은 만일 『주께서 허락하시면』이라는 자세로 그의 계획의 결과를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태도를 취한다. 자신의 계획이나 바람이 있을지라도, 주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졌다. 야고보서 4장 15절에서도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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