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고린도전서 11장 17-26 절) 내가 명하는 이 일에 너희를 칭찬하지 아니하나니 이는 너희의 모임이 유익이 못되고 도리어 해로움이라 먼저 너희가 교회에 모일 때에 너희 중에 분쟁이 있다 함을 듣고 어느 정도 믿거니와 너희 중에 파당이 있어야 너희 중에 옳다 인정함을 받은 자들이 나타나게 되리라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기독교에서 중요한 두가지 예식은 세례와 성찬이다. 이 두 가지는 예수님이 직접 이 땅에 계시는 동안 행하셨고 성도들에게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이기에 신앙의 핵심을 눈으로 보여주는 거룩한 예식이다. 물에 잠기는 세례를 통해, 죄악된 인생이 예수와 함께 죽었음이 선언되고, 물에 잠긴 몸이 물에서 건져지면서 부활한 예수의 생명으로 새롭게 호흡하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 그리스도인으로 태어났음이 선포되어진다.
성찬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성례다. 요한복음 6장 48-51절에서『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그리고 예수님은 요한복음 6장 55절에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과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고린도교회가 이 예수님이 친히 행하라고 명령하신 성찬을 행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수 없으니 이는 먹을 때에 각각 자기의 만찬을 먼저 갖다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함이라 너희가 먹고 마실 집이 없느냐 너희가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무슨 말을 하랴 너희를 칭찬하랴 이것으로 칭찬하지 않노라』
오늘날 행하는 성찬은 예배 중에 행하기 때문에 성찬에 쓰는 빵과 포도주는 아주 작은 한 조각과 한 모금에 불과하지만, 처음 예수님이 성찬을 행하셨던 상황은 유월절 식사 중이었고, 초대교회의 성찬도 식사와 더불어 행해졌다. 함께 음식을 먹은 뒤 그 마지막에 떡과 포도주로 성찬을 행하곤 하였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에서 행해졌던 성찬 때 어떤 사람들은 일찍 와서 배불리 먹고 취하는 데, 어떤 사람들은 없어서 먹지 못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 바울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나누어져 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많은 음식을 가져온 부유한 그룹의 사람들은 제대로 음식을 가지고 올 수 없는 노예와 노동자 출신의 사람들이 허겁지겁 겨우 일을 마치고 오는 상황을 알면서도 기다려주지 않고 자기들끼리 먹고 마시기에 정작 성찬을 행하는 식사의 마지막에는 가난한 노예들과 노동자들은 배고픔 속에서 배부르게 포도주에 취한 부유한 그룹의 사람들을 지켜볼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성찬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줄 필요가 있었기에 성찬에 대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그렇다면 성찬을 대하는 바른 자세는 어떤 것인가? 자신을 살피라는 것이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은 것인가를 살펴라는 것이다. 죽지도 않으면서 성찬하는 것은 결국 죄를 마시는 것이 된다. 고린도 교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성찬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바울은 권면했다.『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주의 몸은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살이 찢겨지고, 피를 흘리신 그 몸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나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는 자가 된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에서 이 말씀을 성찬하기 전에, 그동안 지은 죄가 기억나거나 죄를 지은 경우에는 성찬에 참여하지 말도록 하는 경우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죄인이다. 그렇다면 성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성찬의 의미는 내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죄없는 자로 칭해주시는 것을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성찬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에 참여하는 의식이다. 교회가 그러하고 성찬이 그러한 의식인 것이다. 형식적인 의식과 함께 믿음으로 받아드리는 마음의 의식인 셈이다. 따라서 성찬과 세례는 같은 의미를 갖는다.
세례는 죽는 의식이며, 성찬은 죽었음을 기억하는 의식이다. 로마서 6장 6-7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세례는 죽은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성찬은 죽은 자임을 다시 확인하는 것이다. 죽지 않은 자는 성찬에 참여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죽지 않은 자는 죄가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죄인이 성찬을 하므로서 죄를 마시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내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성도와 예수 그리스도와 서로 하나가 되듯이 연합되었다면, 성도들 간에도 연합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주의 몸의 일차적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런데 주의 몸의 이차적 의미는 성도에게 허락해주신 교회 공동체다. 골로새서1정 24절은 교회 공동체를 주의 몸으로 표현했다. 주의 몸인 교회 공동체의 연합을 위해 서로 기다려 줘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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