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갈라디아서 3장 1-3절)『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내가 너희에게서 다만 이것을 알려 하노니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혹은 듣고 믿음으로냐 너희가 이같이 어리석으냐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
그러나 kjv 성경은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완전해지려 하느냐(Are ye so foolish? having begun in the Spirit, are ye now made perfect by the flesh?)』라고 되어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밖힌 것이 밝히보이는데, 그렇다는 것이다.
이게 구약성경의 아브라함의 이야기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너는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데, 하나님의 영이 아브람에게 역사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아브람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다. 갈라디아서 4장 22-23절에서『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다. 두 여자는 두 언약을 가리킨다. 하나는 시내산으로 부터 종을 낳은 여자 하갈이다. 여전히 율법을 지키고 성전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그 후손이라는 것이다. 그들의 어머니는 하갈이다. 지금 있는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그런데 사라는 4장 26절에서『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사도바울의 눈에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하갈로 보이고, 하늘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어머니 사라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유대교를 완전히 벗어나, 자유함을 입은 것을 말해준다.
4장 28-29절에서『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이 지상의 교회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알곡과 가라지가 있듯이 성령을 따라 난 자와 육체를 따라 난 자다. 이것이 갈라디아 교회의 모습이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에 바울이 편지를 보내는 것이다. 바울은 하갈이 어머니인 자들에게 4장 21절에서『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이들은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는 자들이다.
교회 안에서 누구나 다 성령으로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육체로 마친다면 열처녀의 비유에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다는 것이다. 이것이 롯의 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같이 출발은 하는데,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는 믿음은 처음부터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와 롯의 부인은 처음에는 잘 믿다가 마지막에 실수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믿음의 시작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래서 끝까지 갈 수 없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처녀와 롯의 처는 시작부터가 이스마엘인 것이다. 율법을 지키므로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사도바울이 보기에 유대인들은 하갈로 보이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혈육적으로는 조상이 이삭이지만, 바울은『그들의 어머니는 하갈이라』고 말했다. 시내산으로부터 모세를 통하여 율법을 받은 자들은 그 어머니가 하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율법이 아닌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자들의 어머니는 사라인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처음에는 율법 때문에 누구나 죄인임을 깨닫게 된다.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앙생활 하는 자는 회개하지 않은 자들이다. 그러나 회개하는 자들은 내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이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존재를 포기하고, 하늘로부터 받는 새생명으로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회개는『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기』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에서 스스로 또는 남들이 보기에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의 모습이라면 그들은 회개를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은 천성적 착실함으로 교회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새생명으로 돌이키지 않는 자들이다. 주님 보시기에 모든 사람들이 죄악 가운데 있다. 자아는 악의 표출된 현상이다. 그래서 죽어야만 한다. 자아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자아는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그게 바로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이게 성경에서 탕자와 큰 아들의 이야기다. 아버지의 말을 전혀 지킬 수 없는 자들이다. 그러나 탕자는 회개하여 죽은 자같이 되어 아버지께 돌아왔지만, 큰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에 어긴 적이 없었지만 아버지가 탕자를 받아드리는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의 돌아온 탕자에 대한 모습을 보고 분노하는 것이다. 이게 회개하기 전의 사도바울의 모습이다.
사도바울은 자기 생각에『율법에는 흠이 없는 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후에는『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고 고백했다. 그는 예수를 만나 그리스도가 그의 안에 계심을 알고 있지만, 디모데에게『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는 현재형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는 회개한 후에『율법으로는 의로움을 얻을 자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자기가 남들보다 양심따라 살면서 율법을 많이 지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기가 율법을 범하는 것을 보지 못한다. 이게 영적 소경이다.
교회에 나와서 성경 공부하고, 말씀을 따라 철저히 믿음 생활 잘 하고, 스스로 신앙생활에 만족한다면 그것은 육신적인 자아가 그렇게 생각하고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육신적인 자아는 죽어야 함을 말해준다. 회개는 그런 만족된 신앙생활이 아니라, 사도바울처럼 하나님 앞에서 매일 죽어야 할 존재임을 고백하는 삶이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 안에는 스스로 선한 자가 가득할 것이다.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가 가득할 것이다. 이들은 말은 성령을 따라 산다고 하지만 율법을 잘 지키려고 하는 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영적소경이다. 자기가 지키는 것만 생각하고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아무리 잘 지키려고 해도 인간은 완전히 지킬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이스마엘을 낳는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해서 이스마엘을 낳았다. 하갈은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을 나타낸다. 율법적인 사람들은 신앙생활 잘 하다가, 식어지고, 또 잘하고를 반복한다. 그런 자들은『영원한 약속』이라는 말을 적용시킬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성령으로 신앙 생활한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 중에 이스마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들은 신앙생활을 통해서 스스로 선해지고 있다고 믿고 있는 자들이다. 그러나 매일『내가 죽어야할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새생명에만 관심을 갖는다.
오늘날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이스마엘처럼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의 문제 해결에 몰두하고 있다. 교회에서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고 즐긴다. 이들은 혈과 육의 교제일 뿐이다. 그래서 성령을 따라 산다고 말을 하면서도, 율법을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하고 있는 이스마엘인 것이다. 이삭이 되려면 아브람이 100세가 되어 죽은 것처럼 되어야만 한다. 자기라는 자아가 죽어야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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