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갈라디아서3장25절)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라는 도시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다. 그 당시 교회에는 세례받은 교인들이 대부분이다. 당시의 교인들에게 물 세례가 의미하는 것을 사도바울은 설명하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물세례를 받았으므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의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다면 의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물세례 역시 성령세례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와 사랑이 분리될 수 없듯이 물세례와 성령세례는 분리될 수 없다. 산소와 수소가 분리되면 물이 될 수 없다. 사랑은 의 만큼 담겨있다. 십자가에는 사랑만 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다. 예수님이 인간을 대신해서 죽으셨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예수님은 우리 대신 죽은 것이 아니라 우리를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라고 고백하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진노하신다. 죄가 없는 자기 아들에게 보인 진노만큼 진노하신다. 이게 의다. 성경은『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하고 있다. 죄인이 필요한 것은 의다. 사랑받는 것이 아니라 회개해서 의를 얻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베드로가 말하기를 노아가 120년 동안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세례요한도 전한 것은 의의 도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회개하고 세상으로 부터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는『예수 믿으세요, 그러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한다. 거짓 복음이다.

 회개하지 아니한 자는 주님이 받아주지도 않는다. 우리가 회개 할 수 있는 곳은 십자가 뿐이다. 회개는 옛사람(자아)이 죽는 것을 말한다. 십자가에서 옛사람(자아)이 예수와 죽어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회개(옛사람이 죽는)를 한 적도 없으면서 날마다 회개한다고 한다. 그리고 성령 체험한다고 한다. 

사도행전 20장 21절에서 사도바울이 전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전했다. 회개와 믿음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대표한다. 이것이 세례의 조건이다. 로마서 6장 3-6절을 보면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 같이 우리도 살리심을 믿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는 말이다. 따라서 회개는 옛사람이 죽는 것을 말한다. 회개하면 믿음은 자동적으로 오게된다. 성경은『회개하라』 라고 한다. 그에 따라 오는 믿음은 선물인 것이다. 믿음의 비밀이 바로 회개인 것이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힘써서 믿으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회개하지 않아서 믿음이 부족한 것 같이 보이니까『믿음의 열심을 내라』고 한다. 그리고『회개를 주님이 도와주셔야 하지 우리가 어떻게 회개를 할 수 있는가』라고 하는 자들도 있다. 마귀의 속삭임이다. 성경은『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신다. 제자들이 예수님께『믿음이 더하게 하여주옵소서』라고 하니 예수님이『믿음이 겨자씨 만큼 있어도 이 산을 저 산으로 옮기우리라』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예수님께『우리는 왜 귀신을 쫒아내지 못했습니까』 라고 물었다. 예수님이『믿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믿음이 없다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자라는 말이다. 자아(옛사람)가 주인이어서 믿음을 가질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합하여 라는 말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것을 말한다. 어린 양이 살아있으면 가죽 옷을 만들 수 없지만, 어린 양을 죽여서 가죽을 벗겨 옷을 만든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완전히 죽으셨다. 그리고 가죽이 십자가에서 벗겨진 것이다.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에 매달기 전에 완전히 벌거벗겨서 옷을 나누어 가진 것이다. 겉옷은 네 조각으로 찢어서 나누어 가졌고, 속옷은 통으로 짠 것이기 때문에 제비뽑아서 가져갔다. 왜냐하면 죄인들을 입혀주기 위해서인 것이다. 죄인들의 죄를 감추어 주기 위해서 수치스러운 고통을 감내하고 죽음을 죽으신 것이다. 이런 옷을 입을 수 있는 자는 예수와 더불어 옛사람이 죽는 회개하는 자만이 예수와 연합되는 것이다.

 옛사람이 살아있는 채로 예수를 영접한다는 것은 다 거짓 복음이다. 그래서 영접 기도는 다 가짜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예수를 영접할 수 있다. 물에서 옛사람이 죽고 성령의 능력으로 새 생명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아무리 예수를 잘 믿어도『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나니』라고 고백할 수 없다면 구원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 내가 살아있다면 곤란하다. 

우리가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 자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왜 허물과 죄로 죽어있는가? 옛사람(자아)이 주인 노릇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사람은 옛뱀의 자식이다. 바로 마귀가 심어놓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한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번 부인한 것은 바로 옛사람 때문이었다. 자기가 주인인 것이다. 예수와 연합되지 못한 증거이다. 베드로는『절대 예수님을 버리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지만 예수님은『세번 부인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베드로는『다른 제자들은 다 버려도 자기는 버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육신의 고백인 것이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었다는 고백과 함께 사는 자는 베드로와 같지 않을 것이다. 예수가 주인이 되고, 내가 주인되는 것을 포기하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 것이다. 생각으로는 예수가 주인이지만 마음은 내가 주인인 자는 세번 부인한 베드로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태를 열매로 아신다.『청함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택함을 받은 자는 예수님이 끝까지 책임을 지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교회에서는『청함을 받은 자도 다 예수님이 책임을 진다』라고 가르친다. 거짓복음이다. 그러므로『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라』라고 하신 것이다. 

청함받은 자의 모습은 애굽 땅으로 부터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빠져나와 홍해를 통과하고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백성과도 같은 것이다. 세상 염려를 다 가져가신 것이다. 그런데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며 세상을 그리워하는 것이다.『차라리 애굽이 더 낫다』고 불평들을 했다. 성경은『그들은 우리와 같이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믿음을 화합지 아니하므로 멸망하였느니라』라고 하셨다. 이 믿음은 그들 스스로 쌓은 믿음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은 하나님이 약속했기 때문에 약속만 생각하는 주님이 주시는 믿음인 것이다. 성경에『롯의 처를 생각하라』는 말이 있다.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사람들 속에서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낸 자이다. 그러나 빠져나올 때 뒤를 돌아보고 소금기둥이 되었다. 세상을 다시 그리워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지만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는 말이다. 

기름이 모자라면 기름을 사러간 동안에 주님이 오신다. 기름이 모자라는 사람은 처음부터 기름 준비가 안된 사람이다. 주님은 이쪽 다섯 처녀와 저쪽 다섯 처녀가 분리될 때 오시는 것이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자기의 생각, 자기의 율법에 사로 잡혀있던 자라는 것을 말한다. 옛사람이 죽지않은 자이므로 성령의 기름이 없는 것이다. 처음에 준비한 기름은 스스로가 만든 믿음이다. 그러나 때가 되면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성령으로 난 믿음이 없는 자는 다 넘어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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