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갈라디아서 4장 12-29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되었은즉 너희도 나와 같이 되기를 구하노라 너희가 내게 해롭게 하지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처음에 육체의 약함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복음을 전한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 내 육체에 있으되 이것을 너희가 업신여기지도 아니하며 버리지도 아니하고 오직 나를 하나님의 천사와 같이 또는 그리스도 예수와 같이 영접하였도다 너희의 복이 지금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증언하노니 너희가 할 수만 있었더라면 너희의 눈이라도 빼어 나에게 주었으리라 그런즉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 원수가 되었느냐 그들이 너희에게 대하여 열심 내는 것은 좋은 뜻이 아니요 오직 너희를 이간시켜 너희로 그들에게 대하여 열심을 내게 하려 함이라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내가 너희를 대하였을 때뿐 아니라 언제든지 좋으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내가 이제라도 너희와 함께 있어 내 언성을 높이려 함은 너희에 대하여 의혹이 있음이라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된 바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 노릇 하고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기록된 바 잉태하지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산고를 모르는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박해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12-19절까지는 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 대해서 개인적으로 가졌던 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동안 강경하게 말했던 부분을 부드럽게 접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사도바울은 유대인으로서 벤냐민 지파의 사람이었지만 이방인의 구원을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이방인과 같이 되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에게도 자기와 같은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도바울이 처음에 갈라디아 지역에 복음을 전한 경위에 대해서 설명한다. 바울은 갈라디아 지방을 전도 여행을 하는 중에 병에 걸려서 그곳에서 병을 치료했었다. 병이 든 중에서도 전도를 진행했었다. 그래서 갈라디아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갈라디아 교인들은 병이 든 바울을 좋게 대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의 마음이 돌아선데 대해서 바울은 마음의 고통이 있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복음을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율법을 지키려는 갈라디아 교회 교인들을 향해서 율법을 설명하려고 한다. 율법을 다시 지키려고 하는 것은 갈라디아서 5장 3절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율법적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사람은 율법의 어느 한 부분 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조항을 다 지켜서 행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다.
할례는 율법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그것만 지키고 다른 것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선별적 생각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다 지키던지, 다 안지키던지 두가지 중의 하나라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키다가 그 중의 하나라도 어기면, 율법을 모두 범한 것과 같은 것이다.
바울은 비유를 들어서 복음과 율법의 관계를 설명했다.『율법 아래에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기록되었으되 아브라함에게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여종에게서, 하나는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며 여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다시 율법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말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삭과 이스마엘이 있었다. 이삭은 사라(자유한 자)에게서 나왔고, 이스마엘은 계집종 하갈에게서 나왔다. 이삭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났고, 이스마엘은 육체를 따라 났다. 두 아들은 두 언약을 상징한다.『시내 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갈이라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예루살렘은 율법을 상징한다. 그런데,『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이삭을 낳은 사라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라는 것이다. 땅에 있는 예루살렘은 그림자요,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참 형상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실체라는 것이다.
이 말을 하면서 이사야 54장1절에 있는 말을 인용하고 있다.『잉태하지 못하며 출산하지 못한 너는 노래할지어다 산고를 겪지 못한 너는 외쳐 노래할지어다 이는 홀로 된 여인의 자식이 남편 있는 자의 자식보다 많음이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때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멸망당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시기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회복시킬 것이라는 예언이다. 이 때 이스라엘은 영적인 의미에서 구원받는 천하만민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사도바울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제 더 이상 율법 아래 있는 사탄의 종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갈라디아서 4장 4-6절에서 설명하고 있다.『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율법에서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이다. 율법은 종이 지키는 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이 아니라 성령으로 인도받는 자들이라고 말한다. 곧 약속의 자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조건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된다. 이 세상에서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말씀이다. 그래서 영의 몸을 가진 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의 몸은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과 같은 것이다. 로마서 6장 3-4절에서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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