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빌립보서 1장 12-17절)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이들은 내가 복음을 변증하기 위하여 세우심을 받은 줄 알고 사랑으로 하나 그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로 생각하여 순수하지 못하게 다툼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사도 바울은 감옥생활을 하는 것을 슬퍼할 빌립보 교인들에게, 오히려 자기의 매임은 복음의 진보를 가져 왔으므로, 자기는 기뻐한다고 했다. 여기서 시위대는 궁중에서 황제를 지키는 근위대를 가리킨다. 시위대는 BC 27년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시작된 뒤, 그 영향력이 점차 커져서,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즈음에는 시위대에서 지지하거나 지명한 사람이 황제의 자리에 앉게 되었다. 바울이 로마에 끌려 갔을 때 죄인으로 시위대에 넘겨지게 되었다. 사도행전 28장 17절에서『사흘 후에 바울이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을 청하여 그들이 모인 후에 이르되 여러분 형제들아 내가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 조상의 관습을 배척한 일이 없는데 예루살렘에서 로마인의 손에 죄수로 내준 바 되었으니』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시위대 안과 그 밖의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병사는 순번마다 교대하므로, 자연히 바울은 여러 병사들에게 복음을 증거할 기회가 생겼다. 또한 병사들을 통하여 궁중 안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드러나게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바울이 빌립보 감옥에 갖혔을 때에도 그 감옥의 간수와 그 다른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되었다. 사도행전 15장 25절에서『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사도 바울은 변질된 복음이 전해지는 것은 절대로 기뻐하지 않았다. 갈라디아서 1장 6절에서도『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 투기와 분쟁으로 그리스도를 전한 사람들도 그 전한 내용은 올바른 내용을 전했을 것이다. 내용은 올바랐으나, 그 동기는 순전하지 못하였다. 이와 같이, 올바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도 순전하지 않은 마음으로 전하는 사람도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악인의 악행도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을 이루시는데 쓰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신다. 어떠한 동기로 전하였건 간에, 그리스도가 전해지면 바울은 기쁜 것이었다. 그리스도가 전파되어 잃었던 영이 돌아오게 되는 것은, 누가복음 15장 7절에서 처럼 이 땅에서도 기쁜 일이고, 하늘에서도 기쁨이 되는 것이다.『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구원이란 말은 구원에 관계된 모든 유익한 것으로 이해가 된다. 로마서 8장 28 말씀과 같이 감옥에 매임도 유익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다.『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이렇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게 하는 데에 필요한 것은 중보기도와 성령의 도우심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여러 교회들에게 자신을 위해 기도할 것을 부탁하였다.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바울에게 있어서 그 삶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향하여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고, 복음의 훼방자가 변하여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 로마서 14장 7-8절에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바울의 삶의 가치관이 온전히 바뀌어, 그리스도 외의 모든 것은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길 수 있었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로와 진 삶이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5장 1절에서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베드로도 베드로후서 1장 13-14절에서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바울에게 있어서 죽는다는 것은 부활과 함께 있음을 나타낸다. 고린도후서 5장 2-3절에서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육체가 비록 이 땅에 있지만, 우리의 영의 몸을 입은 영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보다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유익하게 생각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다. 하나님께서 이세상에 사는 동안 사명을 주셨다. 세상 끝날 까지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라는 말씀이다. 사탄은 끊임없이 공격하려고 한다. 그러나 싸움에서 승리해야만 하는 것이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다. 디모데후서 2장 3-4절에서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고난을 받음으로 또는 고행을 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하나의 증거가 된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 5절에서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김을 받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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