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빌립보서 3장 7-9절)『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3장 9절만 보면『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참으로 구원이 쉬워보인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라는 말은『that which is through the faith of Christ』(kjv)『그리스도의 믿음으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면, 그리스도의 믿음이 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버렸지만, 다시 부활시킬 것을 믿은 그 믿음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믿음을 모른채,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므로 잘못된 믿음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한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는 옛사람이 죽어야만 가능하다. 로마서 6장 7절에서『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죽은 자』라는 것은 외형적으로는 세례라는 것을 통해서 의미를 나타낸다. 로마서 6장 4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내면적으로는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 나의 생각을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믿음이다. 열정탐꾼은『들어가면 죽는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광야에서 태어난 새사람을 제외한 출애굽한 모든 사람들이 열정탐꾼의 말을 믿고,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출애굽한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두명(여호수아와 갈렙)  만 가나안으로 들어갔다. 

로마서 6장 4절의 말씀처럼『죽는다』라는 것에 대해서 두가지의 모습을 보인다. 첫째, 인간은 육신의 죄성으로 인하여 육적인 것이 스스로 죽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매일 죄를 회개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예수의 피로 죄씻음을 받아야 할 존재라고 생각하고, 옛사람과 싸워 이기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생각하는 존재다. 율법적인 생각에 사로 잡혀있는 것이다. 둘째는 인간의 육신의 연약함이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적인 악과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첫번째의 생각이 열정탐꾼과 같은 생각이다. 두번째 생각이 가나안으로 들어가 적들과 싸우는 것을 말한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거듭남을 나타낸다. 구원은 거듭나서 육적인 것과 싸우는 것이다. 거듭나지 않는다면 싸울 대상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육에 머무는 자가 된다. 

로마서 8장 5-8절에서『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육신에 있는 자들은 영이 죽어있는 자들로서 하나님과 원수라고 한다. 8장 9절에서는『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자를 말한다. 거듭난 자는 마음의 변화가 아니라 다른 신령한 몸으로 태어난 자를 말한다. 두 몸이 있는 것이다.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몸이 있다. 신령한 몸에 거해야 영이 살아난다. 고린도전서 15장 44절에서『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부모로부터 받은 육체에 양심에 성령의 빛을 비추사, 육체를 통제할 수 있다. 고린도후서 5장 6-9절에서『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있을 때에는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몸으로 있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인간은 죄악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듭나게 되면 세상죄를 사해주신다. 거듭남은 죄에 대하여 악(옛사람)이 죽는 것이다. 그래서 타락해서 죽은 영이 하나님의 의 속으로 들어가 의로운 영으로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5장 4절에서『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신령한 몸을 덧입고 안으로 들어가,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바닷물에서 떨어져 나간 웅덩이가 물고기가 살 수 없는 생명없는 물이 되었다가 바닷물과 합하여 지는 순간, 바닷물 속으로 삼켜져 버리고 웅덩이는 없어지는 것과 같다. 스스로 웅덩이를 파면 죽어있는 존재가 된다. 예레미야 2장 13절에서『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

오늘날 교회에서 성찬을 한다. 떡을 먹고, 잔을 마신다. 십자가에서 죽은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찬은 옛사람의 죽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성찬은 세례의 연장선상에 있다.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난다. 떡을 먹는 것은 예수와 함께 죽은 자라는 것이다. 잔을 마시는 것은 예수의 피가 사탄으로부터 놓임을 받은 자(속량)라는 것을 나타낸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되어서 하나님이 모든 세상죄를 사해주신다는 것이다. 오늘날은 대부분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예수의 보혈만 강조한다. 율법의 제사만을 생각하고 있는 율법적인 사람들이다. 율법적인 사람들은 죄악에서 벗어날 수 없으므로 구원받을 수 없는 것이다. 율법을 따르는 자들은 예수와 상관없는 자들이다. 마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과 같이 예수를 죽이려고 하는 자들과 같은 것이다. 그래서 회개의 의미를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회개는 죄를 반성하고 용서받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이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려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가 되어야 하고, 우리 옛사람이 죽은 자가 되어야만 한다. 그래서 회개는 자기부인의 길을 가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 회개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은  죄를 짓고 회개하고 또 죄를 짓고 죄를 용서받으려고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지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육신의 연약함으로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항상 율법의 제사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죄로부터 벗어난 자다. 요한1서 3장 9절에서『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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