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골로새서 3장 12-25절)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너희는 또한 감사하는 자가 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바울은 기독교인이 버려야 악덕과 지켜야 할 덕목을 자세하게 언급했다. 골로새 교회에 이런 윤리 도덕적인 문제들이 크게 불거진 것이다. 골로새 교회만이 아니라 당시 대다수 교회는 이방인들의 부도덕한 생활에 영향을 받았다. 당시는 로마 문명이 지배하던 시대였다. 로마 문명은 겉으로는 고상하고 세련되긴 했지만 근본적으로는 부도덕하고 폭력적이었다. 바울은 당시의 악덕 다섯 가지를 골 3장 5절에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바울은 예수를 믿기 전 이방 문명권에서 살던 골로새 교인들을 가리켜 옛 사람이라 했고, 예수를 믿은 뒤의 그들을 가리켜 새 사람이라 말했다. 새 사람이 되었으면 이방 문명의 악덕을 버리고 새 사람답게 살아야 마땅하다는 것이다.『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
다섯 개의 악덕과 대별하는 다섯 개의 덕목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이다. 문장 형식도 5절과 비슷하다. 악덕과 덕목을 똑같이 옛사람이 옷 입는 것으로 비유했다. 악덕이라는 옷을 벗고, 덕목이라는 옷을 입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옷은 영의 몸과 육의 몸으로 표현된다. 고린도전서 15장 43-44절에서『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영의 몸을 그리스도의 옷으로도 비유된다. 갈라디아서 3장 26-27절『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었다』는 것은 아담이 하나님이 주신 가죽 옷을 입은 것 처럼,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그 분을 입은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만 한다.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옷을 보고 믿음의 선물을 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로 들어갈 수 있다. 거듭난 자들은 예수님과 완전한 연합을 이룬다. 포도나무와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연합되며, 하나가 된다.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서도 바울은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언급했다.『사랑, 희락, 화평, 인내,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갈라디아서나 골로새서가 말하는 이런 수준의 삶은 옛사람의 옷을 입고 있을 때는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새사람의 옷을 입을 때는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렇게 하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적 싸움이 일어난다. 속사람과 겉사람이 서로 싸우는 것이다. 육의 마음과 영의 마음이 서로 싸운다. 로마서 8장 3-5절에서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사도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을 향하여, 분명한 정체성을 말해주면서 악과 싸워 이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한 정체성은 영의 몸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있으므로, 항상 자기의 정체성을 깨닫고 육이 원하는 길을 가지 말라는 것이다. 비록 육체가 있지만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난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답게 육정의 소욕을 싸워이기라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이 다섯 덕목을 나열한 뒤에 3장 14절에서『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했다. 사랑이 그 모든 덕목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능력이라는 뜻이다.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방식이다. 우리를 생명의 신비에 눈 뜨게 하고 거기에 매진하게 하는 성령의 능력이다. 바울은 이 사랑에 의존하는 기독교인의 삶이 바로 완전이라고 했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믿는 자들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역할을 하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고 오직 주님께 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영을 살리는 일과 관계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이다.『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이 말은 당시 노예들이 육신의 상전을 모시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 속에는 그들의 영은 구원을 받고 영적인 신분은 하나님의 자녀라는 뜻이다. 그들은 이미 영적으로 노예가 아니라 자유인이다. 영적인 자유인이라면 육신의 상전에게 주께 하듯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영적 신분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오직 예수님의 종일 뿐이다. 그래서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른다. 로마서 1장 1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사도바울뿐만이 아니라, 성도들은 다 주 안에서 그리스도의 종이다. 고린도전서 7장 22절에서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비록 예수님의 종이지만, 어느 누구에도 속박받을 수 없는 자유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예수의 피값으로 사신 바 되었기 때문이다. 고린도전서 7장 23절에서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도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그래서『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고 말했다. 주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되라고 하신다. 마태복음 10장 28절『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오직 하나님 만을 두려워하는 자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게된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거듭난 자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게 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자가 되며, 영의 마음이 되는 것이다. 영의 마음은 열심을 내어서 어떤 마음으로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육의 속성 옛사람이 죽을 때, 성령께서 인도하시므로 성령의 마음으로 모든 것이 행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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