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디모데전서 2장 1-15절)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노라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여자는 일체 순종함으로 조용히 배우라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 이는 아담이 먼저 지음을 받고 하와가 그 후며 아담이 속은 것이 아니고 여자가 속아 죄에 빠졌음이라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숙함으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의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영적 아들 디모데에게 2가지 신앙의 권면을 하고 있다. 먼저, 기도에 대해 말했다. 바울은 기도의 대상에 대해 모든 사람이라 말했다. 그리고 왜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바울은 설명한다.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인데, 이유는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종, 학력, 지위, 신분등과 무관하게 차별없이 베풀어지는 은혜다. 그래서 하나님의 원하심은 그 어떤 것에 의해서도 차별없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풍성해져 가는 것이다. 바울은 바로 유일한 중보자되시며, 복음이 되신 그리스도를 모두에게 증거하는 자로 부름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차별없이 모두에게 복음이 전해져야 한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원하심은 차별없이 모두가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더욱 풍성해져 가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인의 기도 대상은 당연히 모든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당시 교회는 로마 제국의 위협아래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이유가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기 위함이라고 해서, 이런 생활 자체가 목적이라는 말은 아니다. 복음이 목적인 것이다. 위정자들도 복음의 대상이고,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케 하셔서 교회를 통해 복음이 전해지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는 다양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다. 다양하기에 그 다양성이 복음 안에서 또 사랑 안에서 인정이 되면, 그 다양성은 강력한 힘이 된다. 하지만 다양성이 차별이 되면, 그 공동체는 힘을 잃어버리고 말것이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듯이, 교회도 차별이 없어야 하며, 주님의 사람인 우리의 지각 속에서도 차별을 떨쳐내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도 우리 중심에서 주님의 관심인 모든 사람으로 넓어져야 한다. 그 속에는 위정자들도 포함되는 것이다. 그들도 복음의 대상이고, 그들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방해없이 세상으로 스며들도록 그들을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면하고 있는 또 다른 한가지가 있다. 바로 예배시 남자와 여자가 가져야 할 바른 품행과 기본 질서에 관한 것이다. 예배시 먼저 남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당시 교회에서 기도자는 일어서서 양손을 들고 기도하던 것이 보편적인 관례였다. 그런데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기도가 손을 드는 외적인 모습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고 말하면서 바로 내적이고 영적인 태도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서서 두손을 들고 경건하고 열정적인 모습을 보이며 기도하고나서 예배후에는 언제 기도했냐는 듯 기도와 전혀 무관한 삶을 살아가는 그런 삶으로, 그런 마음으로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동시에 분노하는 마음으로 논쟁하듯 기도하지 말라는 것이다. 형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직한 마음으로 자신을 잘 살피며, 정결한 생활로 또 나눔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으로 기도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바울의 지적대로 경건한 기도생활을 위해서는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임을 기억하여야만 가능한 일일 것이다.
이어서 여자가 가져야 할 태도에 대해 바울은 권면했다. 남자와 여자의 내용은 두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생물학적으로 남자와 여자이고, 두번째는 씨의 약속이 잇는 자와 없는 자를 상징한다. 첫째, 생물학족 남자와 여자의 경우, 남자와 여자의 차별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시 시대적 상황에서, 교회가 당면한 어떤 문제적 상황에 대응하여 여자들이 지녀야 하는 바른 태도와 마음가짐을 가르치고자 하는 바울의 의도가 있었다. 바울의 마음에는 갈라디아서 3장 28절에서 밝히는 것처럼 언제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하나』라는 전제가 있다. 바울의 가르침은, 교회로 한 몸을 이루는 자들이 자신의 의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과 욕심을 버리고, 창조의 질서아래 올바른 마음과 태도로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의 씨가 없는 자는 정숙하라는 것이다. 말씀을 들어보라는 것이다. 초신자들은 아직 하나님의 씨가 없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해도 말씀의 씨가 잉태되지 않으면 씨가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예수를 믿지만, 예수의 죽음이 믿는 자의 죽음이 되지 않으면, 말씀을 들었지만 아직은 씨가 없는 것이다.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은 먼저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사랑)을 깨닫게 되고, 나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거룩함)에 거해지면 구원을 얻게된다는 말씀이다.
바울은 아담과 하와이야기를 연결시켰다. 죄의 시작이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남자와 여자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씨의 약속이 없는 자는 조용히 하고 구원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깨달아라는 것이다. 말씀의 씨가 정착되고(임신) 자라나고 열매맺을 때(해산)까지 기다리라는 것이다. 말씀을 전해준 사람이 남자이고, 말씀을 듣고 말씀이 자라서 열매맺고 구원을 받는 자가 여자라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영이 죽어 있게하지만, 마지막 아담은 영을 살려주시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영을 죽게 만드는 육의 몸을 전달하는 자가 되고, 마지막 아담은 영을 살려주는 영의 몸을 전달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와 영들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범죄한 영들을 가두기 위해 한 육체를 통해서 분리의 모습으로 표현하시는 것이다. 아담에서 하와가 분리되어 나오는 것은 원래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였는데, 하와가 이탈되어 나온 것으로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설명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첫사람 아담은 그의 아내에게 육의 몸을 마지막 아담은 그의 신부에게 영의 몸을 주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마지막 아담의 표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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