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골로새서 2장 16-23절)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그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골로새교회 성도들이 당면한 첫 번째 어려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만으로는 충분치 못하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편견이었다. 이들 입장에서 이방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보면 무언가 더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로 인해 유대인의 정체성, 선민사상을 지켜주는 음식법과 절기 등을 통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교화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단호하게 말했다. 『누구든지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익숙함을 무기로 그리스도 안에 한 형제 되고 자매된 이들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주의적 신비주의를 경계했다.『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몸으로 번역된 헬라어 소마는 그림자로 번역된 헬라어 스키아와 대조된다. 그림자는 실체가 없다. 몸은 실체가 있다. 그림자는 허상이지만 몸은 실상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고, 부활체로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자들은 비록 육은 이 세상에 있지만, 영의 몸으로 거듭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우편에 있는 것이다. 이것은 상상적인 이야기가 이나리 실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대주의적 신비주의자들은 천사숭배와 같은 신비적인 요소들로 골로새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혼란스럽게 했다. 개인이 경험한 것을 절대시하며 헛되이 과장한 것이다. 바울은 이에 대해 또한 단호하게 말했다. 교회 머리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라는 것이다. 그 이유를 설명한다.『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이는 2장 6-7절과 같은 의미다.『예수 그리스도 안에 행하고,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으라』 오늘날 신비주의 체험주의를 강조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유대주의적 금욕주의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여기서 규례로 번역된 헬라어『스토이체이온』은 원리 또는 규율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원리 또는 힘을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의 특징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규정된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은 잠시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지만 육체를 금하게 하는 힘이 없음을 바울은 강조한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속사람이 달라지며, 거듭나는 것이다. 유대주의적 율법주의자들과 금욕주의자들이 강조하는 유대법과 절기를 지키는 것은 사실 경건한 생활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게 하는 좋은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그 자체에 생명이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나의 속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며, 그리스도에게 뿌리박혀 살아가며,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짐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날마다 죽노라를 기억하며 살아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삶이 달라지는 것이다. 점차적으로 성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라 이전의 것은 죽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이것이 거듭남이다. 거듭남은 마음의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로부터 받은 육의 몸이 죽고, 영의 몸으로 다시 태어남을 말한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만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체험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는 삶이 되어야만 구원받는다. 예수님은 율법에 의해 죽으셨다.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죽는 자도 율법에 의해 죽은 것이다. 그래서 거듭난 자는 더 이상 율법에 얽매이지 말아야만 한다. 그러나 예수와 함께 죽지 않은 자는 하나님이 율법으로 심판하실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10~11절의 말씀으로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사도바울이 한탄하는 말이다. 오늘날 대부분 교회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생각하지만 성령은 없고, 자신의 생각대로 믿는 사람들의 행태를 볼 수 있다.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이 "날"이다. 이 날은 안식일을 지키는 문제를 말한다. 

안식은 내가 스스로 율법을 지켜서 안식하는 것은 포기하고 예수 그리스도 속으로 들어가면 안식이 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서는 여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달은 월삭을 말하는데, 동양에서 말하는 음력과 비슷하지만 매월마다 이름이 따로 있는데, 매월 마다 첫날이 월삭인데, 그 월삭에는 안식일 처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날이었다. 이 월삭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해결하신 것이다. 

그리고 성경에는 일곱가지의 절기(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오순절, 나팔절, 속죄절, 장막절)가 있다. 유월절은 해마다 음식을 먹었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월절이 완성되기 까지는 먹지않겠다고 하셨다. 예수님이 유월절을 다 이루신 것이다. 예수님이 "마지막 유월절 음식을 먹으면서 나를 기념하라" 라고 했는데,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을 전하라는 것이다. 성찬식을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다는 것"을 말한다. 해를 지키는 것은 안식년, 희년이 있다. 안식년은 일곱번째 되는 해를 지키는데, 땅이 없는 자를 위해서 수확을 하지못하도록 한 것이다. 

희년은 안식년을 7번한 후 50번째 되는 해는 모든 것을 다 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 안식년과 희년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신 것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된 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다 이루셨다고 하는데, 오늘날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이루신 것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이다. 요한복음 19장 30절에서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라고 하셨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날과 달과 해와 절기를 다 이룬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말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 예수님을 증거하실 것이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시는 것이다.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는 것을 성령이 오셔서 증거했는데, 여전히 이런 것들을 지켜야 한다고 하면 성령을 훼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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