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골로새서 2장 1-7절) 『내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무릇 내 육신의 얼굴을 보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힘쓰는지를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내가 이것을 말함은 아무도 교묘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내가 육신으로는 떠나 있으나 심령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가 질서 있게 행함과 그리스도를 믿는 너희 믿음이 굳건한 것을 기쁘게 봄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바울 사도는 어떤 면에서 보면 지금 간절한 상황에서 글을 쓰고 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을 자기의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도 알기를 원한다고 하고 있다. 그리고 왜 그래야 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다. 지금 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배경이 있다고 말해왔다. 이 골로새서를 기록한 이유는 그를 통하여 말씀을 들은 에바브라가 골로새 교회를 세웠고, 그 안에서 복음을 전해가는 중에, 당시 골로새가 속한 아시아 지역에서 발전한 철학과 과학에 대하여 박식한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왔고, 교회 안에서 그런 사람들의 박식함이 보기에 좋아서, 복음과 함께 세상적인인 지식이 더해진 사람이 더 중용되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들어왔고, 또 한편으로는 초대교회 시절 영지주의와 같은 사상들이 또한 교회로 들어오려 했기 때문에 이것에 대하여 경계하기 위하여 에바브라가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았고, 그 소식을 들은 바울 사도가 이렇게 편지를 하고 있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로 보면 최고의 사회 계층에 속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면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당시 최고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 또 비단 그 뿐 아니라 이 복음 안에서도 죽은 사람도 살리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무것도 아님을 말하고 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인 것을 말한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와 또 오늘 우리에게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의 어떤 지식이나, 또 어떤 신분이나, 공로나 소유의 정도에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이 더 된다고 하는 그런 모든 변질된 생각을 멀리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의 모든 것이라는 것, 그것이 바로 지혜요 지식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지식은 곧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는 모든 것은 지식도 아니요 지혜도 아닌 것이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며,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가 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거룩하고 흠없는 자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지낸바 될 때 하나님께서 은혜로 그렇게 해 주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것이 더해질수록 신앙이 좋다고 여기는 모든 말을 공교한 말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에 속지 않기를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가 주라는 말은 성경에서 두가지의 의미로 쓰였다.『여호와가 주』라고 번역되었고,『주인』이라는 말로도 번역되었다. 그래서 혼용되어 나온다. 여기에서 주는 여호와가 아니라, 주인이라는 뜻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예수가 주인이 되어야, 그리스도의 사역이 역사하게 된다. 그리스도의 사역은 그의 피값으로『회개하는 자』를 사서 예수가 주가 되게 하시고, 죄를 사하신다. 사는 것이 구속이다. 

골로새서 1장 13-14절에서『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사함을 얻었도다』kjv 성경에는 1장 14절에서 In whom we have redemption through his blood, even the forgiveness of sins: 『그의 피로 말미암아』구속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의 피로 말미암아』가 개역개정에는 빠져있다. 구속은『샀다』는 말씀이다. 사서 죄를 씻는다. 

사도행전 2장 36절에서『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여기서 주는 주인이라는 말씀이다. 회개하면 예수가 주가 되는 것이다. 회개의 의미는 나의 주인됨을 포기하는 것이다. 내가 주인인 삶을 살면서, 회개했다고 말한다면 거짓 회개라는 말이다. 예수를 영접한다고 말을 하는데, 자기가 주인인 삶을 포기하지 않으면 회개가 아니라는 것이다. 회개한 적도 없으면서, 예수믿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 예수믿는다고 하면서 회개한 적이 없으면, 로마서 1-3장에서 말하는 전적타락의 상태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전적타락은 자기가 주인인 것을 말한다. 자기가 주인인 삶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린 아담과 하와처럼,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이 여전히 마음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자기가 주인인 사람은 하나님에 대해서 악인인 것이다. 그래서 악(옛사람)은 죽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죽은 예수와 함께 장사지내야만 한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너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라고 물었을 때『당신은 그리스도이시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말했으며 주라는 말은 빠졌다.『이것은 네가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계시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의심한 적은 없으나, 주가 되지는 못한 것이다. 그것이 삼년반이 지나서 예수가 십자가에 섰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그 전에『너희들은 다 나를 버리라』라고 말하시는데, 제자들은『안 버린다』고 말했다. 특히 베드로가 힘주어 말하자, 예수님은『닭이 세번 울기까지 세번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도 75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셔서 고향을 떠났다.『집을 떠나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에 전적으로 순종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하나님이 아브람의 주가 아니라는 것이다. 완전히 순종하여, 죽은 것 같이 되는데는, 25년의 기간이 필요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며, 성경지식이 많은 사람들도 정작 자기에게 말하는 것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예수가 주가 되지 못하는 삶을 살고 있을 때, 예수를 버리는 제자들과 같은 것이 되는 것이다. 제자들은 오늘날 교회 사람들보다 더 많은 기적을 경험하고 놀라운 체험을 했지만, 십자가에 선 예수를 다 버렸다. 말씀이 내게 하신 것을 깨닫지 못하면 회개한 적도 없으며,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내가 생각하고 믿는 예수와 성경이 나에게 말하는 것을 깨달은 후에 회개하여 자기를 부인하고 믿는 예수는 다를 것이다. 예수를 믿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 예수를 전할 수는 있어도 못박히신 그리스도와 연합되는 것은 다르다. 

믿음은 자기확신과는 다르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 사람들의 믿음은 자기 확신에 근거하고 있다. 믿음은 자기 확신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3장 23절에서는『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라고 말한다. 믿음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그래서 십자가의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도록 믿는 것이다. 이것만이 구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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