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빌레몬서 1장 1-25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과 및 형제 디모데는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인 빌레몬과 자매 압비아와 우리와 함께 병사 된 아킵보와 네 집에 있는 교회에 편지하노니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네 사랑과 믿음이 있음을 들음이니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이르도록 역사하느니라 . . . . . . .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빌레몬서의 저자도 바울이다(1, 9, 19절). 빌레몬서의 저작 연대는 주후 60년경일 것이다. 본 서신은 골로새서와 연관성이 많으며 골로새서와 거의 같은 때에 로마 감옥에서 쓰여졌던 것 같다. 빌레몬서는 한 장으로 된 짧은 서신이다.
사도 바울은 이 편지의 수신자인 빌레몬을 『우리의 사랑을 받는 자요 동역자』라고 부른다. 동역자 라는 말은 함께 일하는 자 라는 뜻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영혼들을 구원하고 참된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여 함께 일하는 자를 가리킨다. 전도하고 목회하는 일과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포함한다. 빌레몬은 한 교회의 담임목사 즉 목회자이었던 것 같다.
사랑을 받는 자매 압비아는 빌레몬의 아내인 것 같다. 아킵보는 우리와 함께 군사된 아킵보라고 표현된다. 그는 빌레몬의 아들이며 그 교회의 목회의 일에 참여한 일꾼이었던 것 같다. 바울은 골로새서 4장 17에서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말했었다.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의 군사들이다. 성도는 사탄과 싸우는 군사들이며, 특히 사탄의 억압에서 갇혀있는 영들을 건져내는 것은 영적 전투에 비유된다. 『네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씀은 초대교회가 가정교회로 시작하였음을 보여준다. 로마서 16장 5절에는『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골로새서 4장 15절에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라고 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했다. 감옥 중에서도 그는 감사를 쉬지 않는다. 그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에서『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했다. 사탄의 억압으로부터 벗어났다는 것을 깨달을 때, 살아있는 순간, 순간이 감사한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도할 때 빌레몬을 언급했다. 사도 바울이 기도 중에 빌레몬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주 예수와 및 모든 성도에 대한 그의 사랑과 믿음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성도 간의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되고, 그리스도로 거듭날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것이다. 요한일서 1장 3절에서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고 말했다. 성도의 교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믿음에 대한 나눔이다. 그래서 서로 권면하고, 영적으로 깨어서 악과 싸워이길 수 있게 만든다. 이런 믿음의 교제를 통하여 성도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성취하신 속죄사역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을 알게 되며, 이 땅에 살고 있는 동안 구원을 향해 달려나가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 구원, 새 생명, 경건과 사랑의 새 성향, 의, 영생, 천국 소망 등을 가리킬 것이다.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함을 얻었다. 그것은 그의 참된 믿음과 사랑 때문이었다. 성도들의 마음은 참된 믿음과 소망과 안에서 평안함과 힘을 얻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교제의 유익이다. 사도 바울은 성도들의 마음이 빌레몬으로 말미암아 평안함과 힘을 얻었다는 사실 때문에, 또 빌레몬의 사랑 때문에 많은 감사와 위로를 얻었다. 옥중의 고난 가운데서, 바울의 감사와 위로는 바로 그것이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이었고, 주인에게서 도망쳐 나왔으나 바울을 통해 구원을 얻었다. 이제 사도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위해 간구한다. 비록 사도로서 무슨 선한 것을 명령할 수 있겠으나, 그는 명령하지 않고 사랑을 인해 간구하였다. 많은 세월을 주를 위해 수고했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옥에 갇혀 있는 나이 많은 그가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빌레몬은 그의 요청과 간구를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오네시모는 전에 빌레몬에게 무익한 종이었으나, 지금 그는 바울과 빌레몬에게 유익한 자가 되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이 만들어 낸 변화다. 복음은 무익한 자를 유익한 자로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죄인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 무익한 자이지만, 구원받은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 유익한 존재가 된다. 과거에는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이었으나 지금은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가 되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노예제도에서 종은 주인의 소유물이었다. 바울은 『그는 내 심복이라』고 표현했다.
오네시모는 큰 은혜를 받았으며 그의 영적 스승이었던 바울을 위한 충성된 수종자가 되었고 바울도 그를 진심으로 아꼈다. 바울은 그를 자기에게 계속 머물러 두어 그의 복음 사역을 위해 수종드는 자로 삼고자 하였으나, 바울은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발적으로 되게 하려 함이로라』고 말한다. 오네시모는 바울에게 필요한, 바울이 아끼는, 충성된 조수이었으나, 바울은 그의 소유권이 빌레몬에게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인의 승낙 아래 오네시모를 자기 곁에 두기를 원했던 것이다. 바울은 빌레몬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되게 하기를 원했다.
오네시모는 이제 빌레몬에게 종 이상이며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이다. 바울에게 그러했다면,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빌레몬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점진적 사회의 개선을 뜻하셨다. 주인들, 윗사람들, 가진 자들의 마음가짐의 변화가 사회개선을 위하여 먼저 필요했다. 하나님께서는 주 안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를 이렇게 사랑하는 형제 관계가 되게 하셨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추천했다. 그는 빌레몬에게, 만일 네가 나를 친구로 여긴다면, 오네시모를 나처럼 영접하라고 부탁한다. 바울이 주 안에서 형제로 귀히 여기는 오네시모를 그의 친구 빌레몬이 어떻게 외면하거나 박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사랑하는 종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듯이, 바울의 사랑하는 조수 오네시모를 영접하는 것은 곧 바울을 영접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와 함께 갇힌 자 에바브라와 또한 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가 문안하느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과 함께 있을지어다』 주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는 주의 일을 위해 함께 일하는 동역자가 되기 원하며,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옥에 함께 갇히기도 한다. 이런 고난과 핍박을 당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잃어버린 영을 구하는 일이 가장 선한 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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