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히브리서 4장 3-11절) 이미 믿는 우리들은 저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그가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제칠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은 제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쉬셨다 하였으며 또 다시 거기에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오랜 후에 다윗의 글에 다시 어느 날을 정하여 오늘이라고 미리 이같이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나니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안식을 구원과 연결하여 설명한다. 성경이 말하는 안식은 창세기 2장에 등장하는데, 하나님께서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유래한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하는 그림자이다. 참 안식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있다는 말이다. 참 안식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것이 바로 참 안식이다. 하나님이 참 안식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안식에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이런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보증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 믿는 자가 육신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영이 나오는데, 하나님의 집을 입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이다.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약속된 땅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자가 믿음과 말씀을 결부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나안 입성을 앞두고, 열두 각 지파에서 한 명씩해서 열두 정탐꾼을 보낸 사건이 있었다. 열 정탐꾼의 부정적 보고에 백성들은 흔들렸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환경, 문화, 가치관을 하나님보다 우선순위를 두었고 마침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반항했다. 그 결과, 40년간 광야를 유랑하였고 불순종했던 1세대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성도에게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쓰라고 말한다. 에베소서 2장 6절에서『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그의 옛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새생명 가운데 일으키심을 받는다. 그 새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죽은 자는 하나님 나라에 앉히움을 받는 것이다. 골로새서 3장 3절에서도 마찬가지로『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라』라고 했다. 죽은 것은 옛사람이다. 그리고『새사람의 생명이 하나님 안에 감취었다』라고 하고 있다. 히브리서 4장 10절에서『이런 자들을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옛사람이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새생명 가운데 태어난 자는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이다.
안식에 들어간 자는『자기의 일을 하지 말라』고 하신다.『자기의 일』이라는 말은 바로『세상을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오늘날『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라든가『안식을 대체하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은『아직 안식에 들어간 자가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거룩히 지켜야 안식에 들어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는데도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고 있는 경우와 별로 다르지 않는 것이다. 아직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못하므로 하나님 나라의 안식에 들어있지 못한 자이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만이 이미 안식에 들어간 자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세기 1-3정에서『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일곱째 날에 복을 주시고 안식하셨다』라는 말은 하나님이 일을 하다 말고 쉬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지으시고 일곱째 날에 복(하늘의 복)을 주시고 이 세상이 장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안식에 들어가겠다 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안식을 주겠노라』고 하는 약속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안식에 들어있는 자들이다. 어느 날을 정해서 안식일이라고 한다면 그 날만 예수 그리스의 안식에 들어있는 말이 되므로 논리적이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지으신 물질세계, 안식이 없는 세상에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에 안식을 주시겠다고 말씀을 하는 것이다. 안식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성도들에게 온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빛이 있으라』 라고 하신 것과 같이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의 참 빛을 보내 주시는 것 처럼, 창세기에서 말씀하시는 안식을 통해서 장차 안식을 주시겠다고 하신 약속이 그 안에 들어있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이 율법에서 안식일을 지켜라 라고 하신 것은 애굽으로 부터 나와서 시내산에 있을 때 말씀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애굽에 가두신 이유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이였다.『부르짖으라』고 하신 것은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이 한 백성을 선택하여,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존재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조치였다. 그 민족을 끄집어 내어서 창세기 1-3절에서 약속하신 안식에 대한 약속을 율법을 통해서 이제 이스라엘과 새롭게 시작을 하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라 라고 하시는 것을 신명기에서 볼 수 있다. 『너희는 기억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애굽에서 종되었던 것을 기억하라고 하셨다. 애굽에서는 고통이었는데, 하나님이 건져주셨으니 안식을 주신 것이다. 애굽에서 나온 것이 안식의 시작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안식의 완성인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첫째 이유는 애굽에서 종되었지만, 지금은 종이 아니다 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안식을 믿지 않는 것이다. 사실 구약에서 안식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참 안식을 위한 연습과정과 같다. 안식을 지키라고 하신 두번째 이유는 대대 후손과의 언약의 표징이라는 것이다.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영원한 언약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표징이라는 것이다. 안식일은 애굽을 나와서 애굽을 벗어났다 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지키는 것은 영원한 언약의 표징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안식을 받을 것이다 라는 것을 믿고 바라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는데, 지키지 않는 것은 애굽으로 부터 고통 가운데 해방되었고, 앞으로 영원한 참 안식으로 들어갈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안믿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돌에 쳐 죽이라고 하신 것이다. 돌에 맞아 죽은 것을 보고 백성들이 생각하라는 것이다. 안식일을 범하면 죽는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원한 안식을 백성들이 받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바라보고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다. 그러니까 안식일을 지키라고 한 이유는 두가지인 것이다. 애굽으로부터 해방된 것과 장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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